매일신문

[종교칼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스라엘 역사에서 선지자(예언자)의 기능 중 하나가 백성을 위로하는 일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내 백성을 위로하라"(이사야 40:1)고 직접적으로 명령한 적이 있다. 기원전 8세기경 당시 이스라엘은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북부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의해 정복당하였고, 시리아의 기세가 남부 이스라엘인 유다 왕국까지 압박해오던 중, 당시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발흥하고 있던 바벨론까지도 유다를 넘보며 호시탐탐 공격의 기회를 잡으려고 하던 중이었다. 그동안 의지했던 남쪽의 이집트는 힘을 잃어가고 있어서 더 이상 나라 안보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런 중에 당시 유다 왕국의 강력한 지도자 웃시아 왕도 죽고 이후 히스기야 왕마저 병이 들어 있던 때였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무엇보다 위로 곧 소망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그 위로에는 위기 속에서 인내하며 절망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담은 소식인데 그 메신저가 곧 선지자들이었다.

오늘 우리에게도 위로자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당시의 이스라엘과 매우 흡사하지 않은가?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나라의 정치, 외교, 경제, 군사, 사회 제 상황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들어간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를 구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찾는 사람은 다음 대통령이 되려는 권력야망가가 아니다. 우리가 찾는 사람은 국민의 마음을 알고 다가오는 위로자이다. 우리들이 기다리는 날은 새로운 리더를 뽑는 앞당겨진 대선일이 아니다. 이 불확실한 상황이 속히 끝나고 촛불과 태극기가 하나 되는 그 날이다. 우리들을 깨우는 참된 희망은 경제대국의 비전 제시가 아니라 이 땅에 전쟁 없는 평화의 날을 꿈꿀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각기 이웃과 더불어 잘사는 행복한 다음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런 위로(慰勞)하는 선지자는 하늘로부터 온다. 선지자는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와 힘을 가진 자이다. 하늘로부터 임하는 메시지를 갖지 않고는 선지자가 될 수 없다. 참위로는 땅에서부터 오지 않는다. 위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볼 때는 엉뚱한 소리이다. 위로의 선지자는 비현실적이어서 이상주의자일 것이고, 논리에 맞지 않고 비합리적이어서 신비주의자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도리어 이상(異象)과 신비를 얻지 못하면 개인과 나라가 망하게 된다고 경고한다.(사무엘상 3:3, 잠언 29:18) 이상과 신비가 미래를 이끈다. 현재에서 미래를 보면 항상 비현실적이고 예측불허의 신비에 속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그 이상과 신비가 곧 다가올 미래이다. 이런 성격의 미래를 현실의 눈과 논리로 계획하고 맞을 준비를 하면 도리어 실패하고 만다. 이것이 현금(現今)의 정치가들의 문제이고, 그래서 그들은 백성을 옳게 위로할 수 없다. 백성은 비록 비현실적인 엉뚱한 소리를 해도 이상과 꿈인 미래를 말해주는 자에게 위로를 얻는다. 이들이 곧 현자(賢者)요 선지자들이다. 이들은 몽상가들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상과 신비를 현실화해 나가는 능력자이다. 성경은 이들이 가진 믿음을 설명하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1)라고 했다.

우리도 서로 위로하며 살자.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을 보아야 한다. 땅 곧 현실을 보면 갈등과 다툼거리만 보인다. 오늘 우리의 길이 막다른 골목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더욱 하늘을 보자.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하늘을 보자. 손을 내밀어 그것들을 따자. 하늘의 것은 허상이 아니라 최고의 실상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 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고 했듯이 하늘이 푸른 것은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만들 꿈이 가득한 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서로 위로하며 살라고 명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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