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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애구(哀邱) 대구(大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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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민족이 큰 날개를 펴고… 비약하는 데는 가장 적당한 지반이 될 것인즉 달리 어디서 이런 땅을 구할 수 있으랴… 대구거류민회를 설립하여… 거류민의 행복을 기약하는 바이다.'

1906년 9월 27일 대구 일본인들은 대구일본거류민회를 꾸렸다. 모임 취지서를 보면 왜 대구를 골랐는지 알 수 있다. 대구에는 과거 약령시로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렸다. 경상도와 경상북도 중심으로 관공서가 자리한, 교통 요지였다. 일본 고향 가는 부산으로 통하고 서울을 잇는 곳이다. 무엇보다 믿음직한 '백'인 일본 군대가 늘 버텼다. 조선과 대륙 침략을 위해 1894년 청일 전쟁 때부터 주둔한 군대는 대구 일본인에게는 든든한 존재였다.

게다가 친일 관료인 경기도 출신의 앞잡이 박중양(朴重陽)도 있었다. 그는 일본인이 바라는 일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1907년 나라 허락도 없이 대구읍성을 허물었다. 전통 양식의 건물인 객사(客舍) 파괴에도 앞섰다. 달성(達城)에 일왕을 위한 시설을 짓는 일에도 나섰다. 일본인을 위한 일에 동포는 무시했다. 조정을 주무른 통감부에 군대 백, 친일 관료까지 거느린 일본인에게 대구는 1910년 패망 전부터 이미 낙원이었다.

그의 친일 짓이 오죽했으면 당시 대구에는 '중양타령'(대한매일신보 1909년 1월 16일 자)이라는 '대구동요'마저 퍼졌겠는가. '중양가절(重陽佳節) 말 말아라. 통곡일세 통곡일세. 누백년을 존숭하던 대구객사 어데 갔노. 애구(哀邱) 대구(大邱) 흥. 중양가절 말 말아라. 어이할고… 대구성곽 구공해(舊公廨·옛 관아)를 일 시간에 팔아먹네. 애구 대구 흥… 일도(一道) 청년 어이할고 애구 대구 흥.' 1894년부터 1945년 광복 때까지 터와 이름, 크기 등의 차이만 있을 뿐 대구를 떠나지 않은 일본군은 그와 대구 일본인의 힘이었다.

대구 중구청이 동성로 대백 앞 광장의 '평화의 소녀상' 설치 문제로 괜한 고민에 빠졌다. 법을 내세우지만 핑계임이 틀림없다. 역사 흔적을 잠깐만 살피면 답이 나와서다. 대백 근처 한일극장 부근부터 종로, 경상감영, 달성공원 등 조선과 우리 여성을 유린한 옛 대구 일본군이 주둔한 터가 수두룩하다. 역사성을 살피면 대백 앞 설치는 딱이다. 안 될 까닭이 없다. 일본인을 위해 물불 안 가린 박중양을 되레 그리면 돌 맞을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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