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세상 모두를 위해 떠나다

봉고차 안은 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들뜬 중년들의 웃음으로 환해졌다. 목적지로 가면서 두 사람씩 손을 잡은 채 눈을 감고 미션을 수행했다.

"종소리가 울리면 10년 후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사인과 함께 '땡땡땡' 자신의 10년, 10년, 10년 후로 계속 미래여행을 떠났다. "무엇이 보이나요?"라는 질문에 제각각 자신의 미래를 그렸다. 질문이 보태질 때마다 웃음이 사라지고 점점 진지해졌다.

"무슨 냄새가 나나요?", "이제 90이라 정신도 없고…냄새도 안 맡아져요." 고요한 차 안에 일제히 웃음보가 터졌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바로 공동묘지. 야외수업 가자는 말에 신바람이 난 도서관 책 쓰기 수강생들의 발걸음은 갑자기 숙연해졌다. 넓은 들판을 가득 채운 묘석들. 떠난 자에게 허락된 50㎝를 넘지 않는 납골당. 그 안에는 살아생전 행복한 순간을 담은 사진 몇 장과 좋아했던 물건 몇몇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무엇을 남기고 우리는 사라지는가.'

다들 복잡한 생각의 출구를 찾는지 말을 잃었다. 멍해진 그들을 데리고 근처 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글자가 빼곡하게 쓰인 종이를 모았다. 전날, 자신이 절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어오라는 과제를 미리 내주었다. 종이 하나하나를 접고 접어 미리 준비한 갑에 담았다. 기억하기 좋은 나무 아래 땅을 파고 갑을 넣었다. 차례차례 한 부삽씩 흙을 더하고 비석을 세웠다.

'잊고 싶은 기억 여기 잠들다/난 할 수 없어/세상 모두를 위하여 떠나다.'

그렇게 그들은 '난 할 수 없다'의 장례식을 치렀다. 그날 이후로 그들의 사전에는 '난 할 수 없다'가 사라졌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도 떠난 자를 만날 수 없었다. 다만,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살피기에 바빴다.

'저는 소설책 한 권을 쓸래요.' '저는 석 달 안에 내 이름이 적힌 시집을 한 권 낼 거예요.' '저는 남편 생일날, 내 책이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나오게 할 거예요. 사랑한다고 인터뷰도 하고요.' 생각만 해도 즐거운 상상이었다.

상상은 과연 즐거움으로만 끝났을까. 그로부터 몇 달 후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부르는 일들이 그들에겐 현실이 되었다. 누군가는 시인이 되고 누군가는 소설가가 되고 누군가는 신문의 한 면을 가득 메웠다. 원하던 남편의 생일날에, 사랑한다는 고백을 전하며.

사람들은 힘든 일을 부채 의식 없이 그만둘 때 '할 수 없다'는 합리화를 한다.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기약 없이 유예하기도 한다. 완벽한 것보다는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행동하면 꿈에 다가간다. 절망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핑계 대지 마라. 가진 것 없는 우리가 100% 가질 수 있는 것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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