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정(雷霆)이 파산(破山)하여도 농자(聾者)는 못 듣나니
백일(白日)이 중천(中天)하여도 고자(瞽者)는 못 보나니
우리는 이목총명(耳目聰明) 남자로 농고(聾瞽) 같지 말리라
이 시조는 퇴계 이황 선생이 쓴 '도산십이곡' 중 제8수이다.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로 시작하는 9수나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로 시작하는 11수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지만 마음공부를 중시했던 퇴계 선생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시조이다.
시조의 내용은 한자만 번역하면 간단하게 파악된다. 산을 깨뜨릴 정도로 큰 천둥과 우렛소리가 나더라도 귀가 먼 사람은 듣지 못하고, 밝은 해가 하늘에 떠 있어도 눈이 먼 사람은 보지 못하니, 우리는 눈과 귀가 총명한 남자로서 귀 멀고, 눈먼 사람처럼 되지 말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귀 멀고, 눈먼 사람이 청각 장애인이나 시각 장애인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 시조의 내용은 매우 볼품없는 것이다. 굳이 시로 쓸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귀 멀고, 눈먼 사람을 진리에 귀 멀고, 눈먼 사람으로 보면 진리 혹은 진실이 명백해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대한 경계가 담긴 더 깊은 뜻을 가지게 된다.
이 시조와 관련된 퇴계 선생의 생각은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퇴계 선생은 사람이 진리에 귀 멀고, 눈멀게 되는 이유는 극단적인 것에 빠지는 데 있다고 보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다른 의견에 귀를 닫은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극단적인 것에 빠지게 되고, 원래 가졌던 총명함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마지막 부분에서 '농고(聾瞽) 같지 말리라'라고 다짐하는 것은 매우 단순한 말 같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극단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극단에 빠진 줄도 모르고 신념에 차 있기 때문이다. 퇴계 선생은 제자 김취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선(善)을 추구하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지나친 것이 문제이며, 학문을 즐기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조급한 것이 문제이며, 예(禮)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편향된 것이 문제이다. 선이 지나치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너무 조급하기 때문에 배우지 않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하며, 편향되게 예를 좋아하기 때문에 세속을 바로잡으려고 드는 것을 예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이다."
극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치우친 것이 아닌지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나의 위치를 생각해야 하며, 끊임없는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물론 이때도 성찰과 반성이 지나쳐 자신감을 잃어버리거나 자학으로 빠지지 않을 만큼 적절함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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