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1970'80년대와의 결별

귄터 그라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양철북'(1979년 작)은 스스로 성장을 멈춘 난쟁이 오스카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오스카의 눈을 통해 나치 태동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의 독일 역사를 보여주는데, 주인공은 물론이고 부모, 이웃 등 등장인물 대부분이 기형적이고 극단적인 정신 상태를 갖고 있다.

양철북을 치고 다니던 오스카는 세 살 때 어른들의 타락과 부정을 목격하고는 이렇게 독백한다. "어른들의 세계에 환멸을 느낀 나는 장래가 두려워서 성장을 멈추기로 했다." 오스카는 더 크지 않고 아기 때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지만, 정신적으로는 어른이었다. 오스카의 유아적 혹은 불구적 모습은 나치즘을 청산하지 못한 전후 독일 사회를 암시한 것이지만,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는 한국의 지도층에게도 별 무리 없이 적용할 수 있는 현상이다.

한국에는 난쟁이 '오스카'처럼 1970, 80년대의 정신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아병적 사고를 가진 이들이 수두룩하다. 1970년대는 산업화 시대, 80년대는 민주화 시대였고, 현재의 사회지도층이 학생'청년기를 보낸 때였다. 이들은 흘러간 시대를 맹목적으로 그리워하거나 그 시대에 습득한 철학과 지식을 '불멸의 진리'처럼 신봉한다. 현실에 대한 불만 탓인지, 공부를 하지 않거나 혜안이 없는 탓인지, 그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유독 정치인과 지식인 중에 이런 분이 많다.

1970년대 시대정신에 머물러 있는 대표적 인물이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에게 국가 경영 노하우나 강단 있는 리더십을 배우지 못하고, 엉뚱하게 권위 의식과 강압적인 태도만 빼닮은 듯 답습했다. 그 시대의 치열함이나 고민은 전혀 알지 못하고, 구시대적 폐습만 잔뜩 익힌 탓에 문화계 블랙리스트, 국사 교과서 국정화 같은 시대역행적인 정책을 내놓았다. 박 대통령은 1970년대 부모가 돌아가시기 직전 청와대에서 행복한 청소년기를 보낸 기억 때문인지, '오스카'와는 반대로 '몸은 자랐지만 정신은 성장하지 않은' 경우가 아닐까.

1980년대 시대정신에 머물러 있는 대표적 인물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대선후보 지지율 1위에 오르내리는 정치인이 구시대적 정신을 갖고 있으니 안타깝다. 그는 '국가 대청소'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재벌과 언론을 바로잡고 국정 농단 공범을 색출하고 왜곡된 역사도 바로잡겠다고도 했다. 마치 1980년대 열렬 학생'노동운동가가 재림한 듯, 기백과 의기가 철철 넘친다.

그 이상은 평가받을지 모르지만, 실현불가능한 구호에 그칠 것이 확실하다.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누구를 공격하고 특정 계층을 증오하고 편을 가르다간 싸움질로 세월을 보낼 것이다. 그렇게 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나을 것이 없는, 아류(?)에 불과한데도 왜 이런 행태를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문 전 대표를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가슴은 있을지언정, 머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문 전 대표가 대권을 잡고 싶다면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1980년대식 사고부터 버려야 한다. 언제까지 서로 찌르고 부수고 헤집어야 끝이 나겠는가. 반대 세력을 껴안고 함께 가는 길을 배우지 않는다면 문 전 대표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21세기 화두는 실용성과 개방성이다. 거기에 '글로벌 스탠더드'의 잣대를 들이대면 우리 사회의 모순과 적폐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싶다. 사회 변혁은 1970, 80년대 방식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방식으로 조용하고 합리적으로 이뤄야 가치가 있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니 많은 정치인들이 도전 의사를 밝히고 있다. 몇몇 분은 '구태와 결별하겠다' '새 시대를 열겠다'는 목소리를 낸다. 진정으로 시대정신에 투철한 것인지, 선두권 후보와의 차별성을 위한 선거전략인지,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다. '과거를 갖고는 결코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면 유권자의 판단이 한결 쉬워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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