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日帝)의 농간으로 전국 상당수 초등학교의 설립 시기가 바뀌었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 충격적이다. 일제가 구한말 고종 때에 세운 학교를 마치 자신들의 시혜품처럼 왜곡시킨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 한국 사회가 아직도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우리 자신의 역사조차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리진호 지적박물관 관장이 1895년부터 1910년 한일강제병탄까지 발행된 구한말 관보와 조선총독부 관보를 확인하니 전국 103개 초교의 설립 시기가 잘못 기록돼 있었다. 이들 초교는 1895년 고종의 조칙에 따라 관공립 소학교로 설립됐는데도, 1906년 일제 통감부가 '보통학교령'을 공포하면서 소학교를 그 이후의 날짜로 등록하게 했다는 것이다. 일제가 구국을 위해 애국지사와 지방 유지들이 설립한 사립학교를 공립보통학교로 전환하면서 그 이전의 학교 역사를 깡그리 말살한 사례도 많았다.
이들 학교는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 이상 개교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정확하다. 대구경북에만 16개 초교가 개교일을 잘못 알고 각종 기념식과 행사를 가져왔다고 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일제가 마치 한국 국민을 위해 학교를 설립한 것처럼 꾸며놓은 일을 아직까지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 스스로 반성할 점이 적지 않다.
뒤늦게나마 이 사실을 알게 됐으니 반드시 바로잡고 넘어가야 한다. 일부 초교 관계자들이 학교와 동창회, 교육 당국과 협의해 개교일을 고치겠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경북고가 지난해 개교 역사를 100주년이 아니라 117주년으로 바로잡은 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북고는 1916년 관립대구고등학교로 출발한 때를 개교일로 보지 않고, 1899년 영남지역 최초 근대학교로 문을 연 달성학교를 효시로 보고 역사를 고쳤다.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자부심과 민족정기 고양을 위해서는 꼭 해야 할 일이다. 독도, 위안부 같은 거대 담론도 중요하지만, 학교 역사 왜곡 같은 잔재는 우선적으로 없애야 한다. 왜곡되고 뒤틀린 학교 역사는 졸업생과 구성원 등이 뜻을 모아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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