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냉정과 열정 사이

지하철 광경을 담은 동영상이 잊히지 않습니다.

대구 말씨의 한 할머니가 장황하게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중년의 아저씨가 그만하라고 합니다. 할머니가 요즘 사람들은 굶어보지 않아서, 보릿고개를 몰라서, 6'25전쟁을 겪지 않아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 아저씨 소리가 더 커집니다. 그만하라고. 여기 혼자 탄 것이 아니니 조용히 하라고 합니다. 언성이 높아지고 이야기가 서로 겉돌더니 급기야 욕설이 튀어나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습니다. 일촉즉발 더 험악해질 수도 있겠다 싶을 즈음 아저씨가 먼저 자리를 피해보지만, 할머니가 뒤따라갑니다. 승객들은 무표정한 듯 불편한 기색으로 묵묵히 있습니다. 할머니 목소리가 쩌렁쩌렁합니다. 아저씨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갑갑한 이야기 그만하라고 욕설을 섞어 소리 지릅니다. 끝까지 보지를 못하겠습니다. 거기까지만 봤습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정말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이 이렇게 쪼개지고 있습니다. 분노로 가득한 사람들이 두 편으로 갈립니다. 철천지원수처럼 대적합니다. 그러나 당연히 원수가 아닙니다.

살아온 궤적과 거기서 얻은 교훈이 다릅니다. 정보를 얻는 출처가 다르고 그것을 평가하는 잣대가 다릅니다. 사회적 경험과 지위, 삶의 과제와 자기표현 방식이 다릅니다. 생활 습관이 다르고 문화가 다릅니다. 굉장히 큰 '다름'이지요.

그렇다고 그것이 서로에게 서슬 퍼런 칼날을 들이댈 명분이 되지는 않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따로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속성을 가진 개별체인 동시에 공동체 일원입니다. 각자의 생각이나 행동이 자신이나 사회에 해가 가지 않는 한 각자의 것을 인정합니다. 인정한 후 이를 반영하거나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이번 경우도 그렇습니다. 할머니나 아저씨가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친 것은 없습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토론이나 연설은 서로 동의가 될 때 하는 건 어떨까요. 이참에 토론문화가 융성하기를. 나의 근거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나의 판단으로 진실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가짜 뉴스를 편식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다 해결될 일도 아니지요. 성조기는 또 얼마나 뜬금없나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지하철 할머니에게서 사랑하는 저의 어머니를 봅니다. 그 할머니가 나라 망할 징조라고 너무 걱정하지도 말고 몸 상하지도 말기를 바랍니다. 지하철 아저씨에게서는 저를 봅니다. 그 아저씨 역시 너무 속 끓이지 말고 이렇게 오래가리라고 생각지도 못했기에 절대 지치지도 말기 바랍니다. 제가 차마 보지 못한 결론은 묵묵히 있던 주변 사람들이 침착하게 두 분을 잘 보듬어 숨 고르게 하고 내릴 곳은 어딘지 물어봐 주는 것으로 끝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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