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와대 통신] 왕의 나라

서울에 온 뒤 기자는 자주 왕(王)을 떠올린다. 출입처로 등록돼 있는 청와대를 갈 때마다 조선시대 왕이 살았던 경복궁을 차창 밖으로 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경복궁 바로 뒤편에 위치해 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청와대는 경북궁을 내려다보고 있는 위치다.

청와대 터에 대한 역사를 찾아보니 이곳은 오래전부터 왕의 체취가 있었다. 경복궁 창건 이래 지금의 청와대 터는 궁궐의 후원이었다고 한다.

그 후 일제가 조선총독부 청사를 경복궁 안에 지은 뒤 지금의 청와대 터에 총독관저를 만들었고, 청와대 본관의 기원이 됐다. 1945년 8'15 광복 후 미 군정 시대엔 군정 장관의 관저로 사용됐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부터는 대통령의 관저가 됐다.

궁궐에 살았던 왕이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것은 1910년이다. 왕은 살아 있었지만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면서 왕의 통치권은 무너져 내렸다. 한반도에 제대로 된 통치권을 가진 통일국가가 들어선 676년(신라의 삼국 통일)부터 지속된 절대 왕정이 완전히 붕괴되고 왕이 사라진 것이다.

경술국치를 겪은 1910년을 한반도의 1천200여 년 절대 왕정이 무너진 시점으로 봤을 때 왕이 공식적으로 통치권을 완전 상실하고 자취를 감춘 지도 벌써 100년 넘게 흘렀다. 왕정이 무너지고 식민지 시대를 경험했던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이 됐다.

그러하건만 청와대를 오가는 기자는 경복궁과 청와대를 보며 우리 정치 문화가 과연 왕정 시대를 완전히 벗어났는지에 대해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공화국인 우리나라 국민들이 과연 청와대에 살고 있는 대통령을 국민의 공복으로 바라봤습니까? 우리 정치문화는 왕조 시절처럼 청와대를 섬김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까? 왕조시대를 연상케 할 만큼의 엄청난 권력을 청와대에 몰아주지 않았던가요? 우리 국민들은 매 5년마다 대통령이 아니라 왕을 뽑았던 것은 아닌지요? 그러다 보니 대통령은 국민이 부여한 헌법상의 의무를 저버리고 왕의 길을 걸었던 것이 아닌가요?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한결같은 불행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요?" 분권형 개헌을 주장하는 어느 현역 국회의원의 말이다.

삼권분립 이론을 정립한 몽테스키외는 이렇게 말했다. 개인의 자유는 국가권력이 사법'입법'행정으로 나뉘어 서로 견제'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비로소 확보된다고. 18세기 중반, 몽테스키외는 이미 이런 생각을 했건만 21세기를 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왜 깨달음이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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