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일본군에 징집돼 고생한 남편
위안부 피하려 16세에 취직한 부인
암울했던 시기 넘어 부부의 연 맺어
100점짜리 남편, 자녀에게도 100점
퇴근길 한 번도 빈손으로 온 적 없어
올해 치매 왔지만, 존재만으로 행복
"50년을 함께 살았을 때는 이제 여한 없이 살았다 생각했는데 그 후로 20년이 흘렀네요. 올해가 결혼 70주년이 됩니다."
소문난 부부 금슬 덕분인지 이경옥(90) 씨는 아흔이라는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이 씨의 이마에는 주름 하나 없고 목소리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이 넘쳤다. 남편 권영신(100) 씨도 올해 1월부터 가벼운 치매증상이 오긴 했지만 평생 지병으로 고생했던 일이 한 번도 없다. 70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의 평소 모습은 어떨까? 이 씨는 "70년 동안 알콩달콩 살아온 부부 금슬의 비결은 모두 자상한 남편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산전수전 일제강점기를 넘어 만남까지
권 씨와 이 씨 두 사람 모두 혹독한 일제강점기를 경험했다. 부부는 무사히 일제강점기를 넘겼기 때문에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었다. 권 씨는 일제강점기 시절 해외 파병 인력으로 강제 징집돼 타국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 씨는 위안부 모집을 피하려 10대 시절 회사에 취직해 일찍이 가장(家長)이 됐다.
권 씨는 어린 시절 일본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14세가 되던 해 바다를 건넜다. 새어머니의 구박을 못 견뎌 집을 나온 것이다. 10대 시절을 보낸 일본인 가정에서도 머슴살이를 하면서 돈을 모으지 못했다. 결국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게 됐다. 권 씨는 함경도 원산에 있는 석유회사에서 직원을 모집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을 찾았다. 뒤늦게 권 씨는 자신이 해외로 파견되는 일본 군수병으로 뽑힌 사실을 알게 됐지만 이미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미얀마 생활은 지금 생각하기에도 끔찍스럽기만 하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일본군이 패하면서 권 씨가 소속된 부대는 외딴 섬으로 피신했고 무려 넉 달 동안이나 그곳에서 생활했다. 낮에는 숨어 있고 밤에 바깥으로 나와 뱀이나 개구리를 잡아먹었다. 열흘 정도 지나자 굶어 죽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권 씨는 강제징집으로 인한 피해를 인정받아 '일제 강제동원' 보상금을 매년 80만원씩 받고 있다.
이 씨는 16세가 되던 해 우정국 전화 교환수로 취직했다. 어린 나이에 취직을 하게 된 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였다. 당시에는 일본군이 16세 전후 소녀들을 모조리 위안부로 잡아갔다. 결혼하거나 취직하면 면제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이런 사유로 장(場)이 들어서는 날이면 15세 소녀들이 족두리를 쓰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자상한 남편, 최고의 할아버지
권 씨는 고국으로 돌아오는 날부터 자상한 남편이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행복한 가정만 이룰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내 이 씨는 "남편은 첫 만남부터 70년이 지난 오늘까지 꾸준히 자상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 씨는 40여 년 전 남편이 처음 텔레비전을 사 오던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권 씨는 똑같은 텔레비전 2대를 사 왔고 1대를 구미 선산에 있는 처가댁에 선물했다. 시골에는 텔레비전이 귀하던 시절이라 장인어른과 장모 체면을 세워 드리기 위해 선물한 것이다. 권 씨는 아내가 9남매 중 맏이기 때문에 환갑잔치도 도맡아야 한다며 장인과 장모의 잔치를 직접 준비해 열기도 했다.
아내에게도 100점짜리 남편이지만 자녀들에게도 권 씨는 가장 멋진 아버지이다. 권 씨의 자녀들은 지금도 아버지의 퇴근길을 추억하면 설렌다. "아버지는 일이 바빠 밤 10시가 넘어 집에 들어올 때도 많았지만 단 한 번도 빈손으로 집에 들어온 적이 없었습니다." 권 씨의 자녀들은 아버지를 기다리던 습관 때문인지 노인이 된 지금도 10시 전에 자는 일이 없다.
◆행복한 부부의 4계명
권 씨는 올해 들어 초기 치매 증상을 앓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정신이 멀쩡할 때가 많지만 한 번씩 대소변을 못 가리는 일도 생긴다. 이 씨는 뒤늦게 남편 수발을 시작하게 됐다. "평생 잘해줬으니 이 정도 내조는 해야 하지요. 남편이 100살까지 살면서 생활비를 주지 않은 적이 없고 지병을 앓아 고생시킨 적이 없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이 씨는 아흔 살에 치매 환자를 돌보게 됐지만 70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고 했다. 오히려 지금 남편이 곁에 없다면 자신 또한 건강을 유지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70년을 화목하게 살아온 두 부부는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행복한 부부가 지키고 있는 4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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