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를 갈라 싸운 지 벌써 세 달이 다 돼 간다. 정말 할 만큼 다 했다. 상대방을 향해 욕도 했고 증오와 저주를 퍼붓기도 했고, 국민들을 향해 같은 편이 되어달라고 호소도 했다. 그리고 승리할 것이라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도 했다. 이제는 광장에서 물러나는 게 맞다. 광장에서 더 할 게 없다. 어느 영화 대사처럼 "이제 마이 했다(무따) 아이가?" 지금부터 하는 건 다 재방송이고 리바이벌일 뿐이다. 재미도 파괴력도 갈수록 시들해진다는 한계효용체감 법칙의 적용을 받는다. 더 많이 길바닥에 나온다고, 목소리가 더 크다고 이길 수 있는 싸움도 아니다. 광장을 떠나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승복해야 한다.
길어야 일주일이다. 이르면 4일이다. 최선을 다한 경주였다. 옳고 그름을 떠나 참 열심히들 싸우고 외쳤다. 매 주말이면 편을 갈라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거짓말처럼 큰 사고 하나 없었다.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오가는 언사도 갈수록 더 거칠어졌지만 불상사는 없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서로를 의식하고 스스로 경계한 결과다.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마음으로는 승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기 싫을 것이다. 또 논리적으로도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동으로는 승복하는 길밖에 없다. 다른 길이 있으면 누가 좀 가르쳐 달라.
승복에 예외가 있을 수도 없다. 촛불을 들고 부모를 따라나온 어린아이와 중고생들부터 태극기를 들고 두르고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며 나라 걱정을 한 어르신들까지 누구도 '승복' 두 글자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물론 개인적인 의사 표시야 자유지만 그게 불복이어서는 용납될 수 없다.
촛불과 태극기 앞에서 이들을 부추기고 분위기에 편승하고, 자극하고 선동했던 정치인들도 입을 다물어야 한다. 단상에서 내려오고 앞줄에서 물러나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인용이든 기각이든. 광장 사람들보다 더 날뛰고 더 거친 언사를 계속해서는 곤란하다. 그런 이들은 꼭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 선거에서 표로 응징하고 도태시켜야 한다.
대선주자라는 이들은 물어볼 것도 없다. 조기 대선이 유리한 후보도 있고, 연말 대선이라야 해볼 만하다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 건 개인 사정일 뿐이다. 결론은 헌재의 결정을 누구나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인용을 확신한다'거나 '기각돼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쏟아내지만 이제는 찢어질 것만 같은 나라를 생각하고 패 갈린 국민을 걱정해야 한다. 그게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이가 당연히 가져야 할 자세다. 설령 원치 않는 결과가 나와도 지지자들을 설득하고 승복시킬 수 있어야 지도자다. 그렇지 않다면 지도자 반열에서 과감히 지워야 한다.
승복에는 박근혜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왜 억울하지 않겠는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탄핵까지 당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없을 리 없다. 단 한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대통령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법적인 판단을 거스를 수 있는 권한은 대통령에게도 없다.
기각되면 대통령직에 그날로 복귀하면 된다. 갈라진 나라를 하나로 봉합하는 과제도,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도 대통령의 몫이 된다. 촛불도 국민이다. 이들도 껴안아야 한다. 반대로 인용된다면 당장 대통령직에서 파면된다. 기소를 당하고 법정에 서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승복해야 한다. 그러겠다고 미리 선언이라도 하면 더 좋겠다. 반발하는 태극기를 든 이들에게도 말해야 한다.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승복하라고. 헌재의 마지막 변론에 제출한 서면 진술에서 박 대통령은 "어떤 상황이 오든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모아 지금의 혼란을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인용이든 기각이든 정말, 제발 그 말대로 하시길 바란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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