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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Пиковая Дама(삐꼬바야 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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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젊은 공병 장교였다. 특전사도 멋있어 보이기는 하나 내가 사는 19세기 제정 러시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표창장 같은 건 받아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독일계인 나를 '게르만'이라고 불렀다. 동료들의 카드놀이를 지켜보기만 하는 것을 두고도 경제관념이 밝은 독일인이어서 그렇다고 수군댔다.

그런데 아무리 부추겨도 도박을 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솔직히 카드를 쥐어보고는 싶었지만 빈털터리가 되는 게 더 두려웠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큰 변화가 생겼다. 귀족인 친구 할머니가 도박에서 무조건 이기는 비법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으면서다. 밤을 꼬박 새운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를 걸으며 결심했다. '알아내기만 한다면 내 운을 시험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 그 귀부인은 젊었을 때 '모스크바의 비너스'로 불렸다고 한다. 고백을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끊은 청년이 있을 정도였다. 적어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미모와 유산 덕분에 손꼽히는 사교계 셀러브리티(Celebrity)였던 건 분명하다.

매우 변덕스럽고, 화려했던 과거에만 빠져 있기는 했지만 그는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무도회에 찾아온 이들도 늘 그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는 혼자 남겨지기 일쑤였고, 집을 비우는 날이면 하인들이 비싼 물건들을 몰래 내다 팔기도 했다.

아무튼 내가 보기에 그는 비법을 제외하면 볼품없는 노파에 불과했다. 전략적으로 접근했던 그의 수양딸 덕분에 들어갈 수 있었던 침실에서 분명히 목격했다. 낡은 우상(偶像) 앞에서 그가 장미꽃으로 장식된 모자와 가발을 벗자 '비밀'이 드러났다. 아뿔싸!

# 나는 비법을 알려달라고 애원했다. "아버지의 유산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인간은 악마의 힘을 빌린다 해도 결국 초라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돈의 가치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무서운 벌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죄를 제가 대신 떠안을 각오가 돼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이 없었다. 권총을 꺼내 든 내 모습에 놀란 나머지 심장이 멎어버린 것이다. 푸른 빛 도는 대저택에서 겨우 빠져나온 나는 장례식에 가서야 조금이나마 양심의 가책을 덜어낼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날 새벽, 그의 혼백이 나를 찾아와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숫자 '3' '7' '1'을 일러줬다. 조건은 두 번 다시 도박을 하지 말라는 것뿐이었다. '도구'였을 뿐인 수양딸과 결혼해 준다면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용서하겠다고 약속했다. 오! 장밋빛 미래가 현실이라니!

#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비밀을 써먹을 기회는 멀리 있지 않았다. 어느 대부호가 도박판을 열었고, 나는 혼백이 알려준 순서대로 카드를 골랐다. 생애 첫 카드게임에서 연거푸 두 판을 이기자 재산은 몇 배로 불어났다. 하지만 행운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아니, 그 귀부인의 저주였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건 마지막 게임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1'을 선택했는데도 지고 말았다. 나의 카드가 '스페이드의 여왕'(Пиковая Дама)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카드 그림 속 여왕이 비웃는 표정으로 쏘아보는 게 느껴졌다.

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바람에 실려 전해진 이 '괴담'을 듣고 훗날 푸시킨이라는 작가는 단편소설로 쓰기도 했고, 차이콥스키라는 작곡가는 오페라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20여 년 전 푸시킨의 묘지에서 알게 됐다는 한국의 어떤 기자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자기 나라 사정과 비슷한 것 같다며 글감으로 쓰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런데 타인을 배려할 줄도, 사랑할 줄도 모르고, 오로지 목적을 이루는 데만 눈이 멀어 있던 내가 후세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뭐 있겠나? 분수대로 살라는 말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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