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를 배신하면 안 돼'는 조폭 의리
공인의 윤리는 국민에 신의 지켜야
보수 경쟁 후보에 '배신' 뒤집어 씌워
자극적 언사, 득표에 큰 도움 안 될 듯
"TK 민심은 살인자는 용서해도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의 말이다. 보수의 헤게모니를 놓고 경쟁하는 상대에게 '배신'의 프레임을 뒤집어씌우겠다는 속셈이다. 이런 발언이 특정 지역에서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자극적 언사가 지역 밖에서까지 그의 표를 늘려줄 것 같지는 않다.
각 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끝났다. 일찌감치 경선 후보를 선출한 정의당을 제외하고 나머지 4당의 경선에 순위를 매긴다면, 단연 1위는 후보들 사이에 매우 수준 높은 스탠딩 토론을 보여줬던 바른정당의 경선이리라. 이것만 봐도 보수에 '인물'이 없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 인물들이 정작 보수층으로부터 지지를 못 받는다는 것이다.
대체 왜 그럴까? 대한민국 보수의 핵심을 이루는 TK 정서가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TK는 왜 이들을 자신들의 적자로 인정하지 않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을 '배신자'로 여기기 때문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홍준표 후보는 경쟁 상대의 약점을 제대로 찌른 셈이다.
문제는 홍준표 후보가 '배신의 정치학'을 아예 TK 정서로 내세웠다는 데에 있다. "살인자는 용서해도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유승민 후보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조폭의 세계에서나 통용되는 전근대적 윤리다. 아무리 보수적이라도 설마 TK 주민들이 '보스에게 충성하면 살인자도 용서한다'는 해괴한 윤리를 실천하며 살겠는가?
이 조폭 윤리와 대극을 이루는 것이 바로 윤석렬 특검보의 공직자 윤리다. 국정원 댓글 사건 때 국감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특검보로 임명된 후에는 '혹시 그때의 원한으로 보복 수사 하는 게 아니냐?'는 기자의 우문에 이렇게 잘라 말했다. "수사권 가지고 보복을 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
이쯤에서 '배신'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자. '배신'이란 '신의를 저버린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것이 도대체 '누구'의 신의냐는 것이다. 저버리는 그것은 보스에 대한 신의일 수도 있고, 국민에 대한 신의일 수도 있다. 여기서 다시 물어보자. 그렇다면 공직자가 절대로 저버려서는 안 되는 것은 누구의 신뢰일까?
보스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조폭의 의리라면, 국민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공인의 윤리다. 그럼 홍준표 후보가 강조하는 '배신의 정치학'은 어느 쪽일까? 유승민 후보가 국민을 배신했다는 걸까, 아니면 보스를 배신했다는 걸까? 그 대답은 명확하다. 그가 박근혜라는 정치적 보스에 대한 신의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박근혜라는 정치적 보스가 국민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다면, 그에 대한 배신이 곧 국민에 대한 배신일 수도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심판과 검찰의 기소가 보여주듯이 박근혜라는 정치적 보스는 국민의 신의를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저버렸다. 정치인이 국민을 배신한 보스를 따른다면, 그거야말로 국민을 배신하는 길이리라.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박근혜 개인에 대한 배신이 곧 국가에 대한 배신이요,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는 뜻일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국가가 아니며, 대한민국은 '짐이 곧 국가'였던 절대왕정이 아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홍준표 후보가 자유한국당 후보로 당선됐음에도 불구하고 컨벤션 효과를 누리기는커녕 외려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이제 박정희나 박근혜를 팔아 모을 수 있는 표는 최대 15%를 못 넘는다. 탄핵에도 정신 못 차리고 '배신의 정치학'을 내세워 특정 가문에 대한 충성을 팔아 정치를 하는 이상, 15% 미만이라는 저조한 지지율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대한민국 보수의 항상적 상태가 될 것이다.
보수적 유권자의 상당수가 자유한국당이 아닌 국민의당 후보를 대안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은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의 미래가 어떨지 미리 보여주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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