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보안관

'영웅본색' 비장함 그대로…중년 아재 취향 저격

과잉수사로 잘려 낙향한 전직 형사

보안관 자처하며 오지랖 넓은 행동

동네 비치타운 건설 사업가와 갈등

'촌발' 날리는 정서, 걸쭉한 부산 사투리

꼰대가 된 40,50대 좌충우돌 코미디

이성민·조진웅·김성균 삼색구도 매력

1980년대를 풍미했던 홍콩영화 '영웅본색'의 비장함을 향수 어리게 기억하고 있는 40, 50대 아저씨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코미디 영화이다. 영화가 담은 내용은 스케일이 큰 범죄 액션물이지만, 소도시의 소시민 아저씨들의 좌충우돌 상황을 엮어 무거운 내용이지만 가볍게 즐길 수 있다.

5년 전 과잉 수사로 잘리고 낙향하여 고깃집을 운영하는 전직 형사 대호(이성민)는 동네의 보안관을 자처하며 바다만큼 드넓은 오지랖으로 고향인 기장을 수호하는데 여념이 없다. 어느 날 평화롭던 동네에 비치타운 건설을 위해 성공한 사업가 종진(조진웅)이 서울에서 내려오고 때마침 인근 해운대에 마약이 돌기 시작한다. 대호는 종진을 마약범으로 의심해 처남 덕만(김성균)을 조수로 '나 홀로 수사'에 나서지만, 주민들은 돈 많고 세련된 종진의 편에 선다.

'군도: 민란의 시대'(2014)에서 조연출을 했던 신예 김형주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이성민은 '로봇, 소리'(2016)에서 사라진 딸을 찾으려고 10년 동안 전국을 헤매는 아버지 역할로 첫 주연을 한 이래, 두 번째로 주연을 맡아 영화를 이끌어간다. 황정민이 형사로 나온 '베테랑'(2014)의 지방 아저씨 버전이라고 할까. 덜 세련되고 촌발 날리는 정서가 영화의 전체 분위기를 형성한다. 걸쭉한 부산 사투리에 꼰대가 된 아재들의 토닥거림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사회 심층부에 뿌리 깊게 자리한 악의 연대를 비장하게 그리는 범죄 수사물에 지친 관객이라면 꽤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비리 때문에 경찰 지위에서 해제된 한 인물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접하고 이를 자력으로 해결하여, 명예도 권력도 탐하지 않은 채 표표히 떠나는 전형적인 장르 서사를 취한다.

5년 전 형사 대호는 초짜 마약 투약범인 가난한 외항선원 종진의 딱한 사정을 동정하고 그를 도왔다. 그러나 현재의 두 사람은 위치가 달라져 있다. 종진은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고, 대호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마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동네 꼰대 아재이다. 두 사람의 역전된 위치에도, 종진은 내내 겸손하고 점잖으며, 대호는 오지랖에 허세로 가득해서, 두 사람의 관계 구도에서 쉽사리 주인공의 편에 서기가 어렵다. 또한, 비밀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 조진웅의 무게감 때문인지, 영화 중후반부에 드러나는 반전이 그리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영화는 마약 범죄라는 표면적인 이야기 아래, 개발과 투기로 몸살을 앓는 지역 소도시의 문제점을 담는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탓에, 외지에서 들어온 투기꾼이 오랫동안 구축된 마을의 자연스러운 경제 순환 구조를 깨뜨리는 현상을 반영한다. 마을 경제는 파탄이 나고 마을 공동체도 와해하여 버리는 식의 수없이 봐온 안타까운 사건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지역 로컬 시네마로서의 매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 지역 사투리를 맛깔 나게 활용한 대사의 향연이 또 하나의 재미 요소이다. 출신과 성장 지역을 꼼꼼하게 따지는 시대에 뒤떨어진 고루한 사고가 얼마나 지역 사회에 팽배해 있는지도 깨알같이 반영했다.

치고 빠지는 코미디의 리듬감이 다소 느슨한 점이 있지만, 이성민·조진웅·김성균의 개성적인 삼색 구도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남자들의 영화라서 그런지,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을 돕는 억척스러운 아내와 순진한 로맨스의 대상으로 한정되는 관행은 여전하다.

'영웅본색'의 멋스러움을 기억하는 중년 남성 관객을 타깃으로 한 영화로, 가족의 달에 온 가족이 즐기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지만, 복고풍의 촌스러움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젊은 관객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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