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달과 6펜스(민음사)

달과 6펜스 사이, 인간의 본성을 읽다.

이영철 작
이영철 작 '달의 궁전으로 가는 연인'

'한준희(대구시교육청 장학사)의 문학노트' 연재(64회)를 끝내고, 이번 주부터는 서평 쓰기 시민 모임인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들이 읽은 책과 독서감상문을 소개하는 '내가 읽은 책'을 연재한다. 이 코너에서는 신간도서뿐만 아니라, 오래전에 출판된 책이더라도 독서아카데미 회원들이 시민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온 세상이 초록빛으로 환하다. 봄꽃이 피고 지니, 녹음이 짙어졌다. 봄은 이렇듯 모두에게 축복을 내리는 계절이다. 야외로 나가 자연을 가슴에 담다 보면 그동안 쌓인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사라지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그럴 수 없다면 젊은 시절 읽었던 고전을 책장 깊숙이에서 꺼내 다시 한 번 읽어보는 것도 봄을 즐기는 하나의 좋은 방법일 것이다.

달과 6펜스. 제목만으로는 소설의 내용을 예견하기 어렵다. 다만 달의 서정적 감성과 동전의 현실성이 제목 속에 녹아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달빛과 동전은 둥근 것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렇지만 달빛과 동전 6펜스가 대비되어 그 의미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만큼 크게 느껴진다. 삶의 안락함을 버리고 예술혼을 따라 고난과 야생의 삶에 몸을 던져, 예술로 승화시킨 스트릭랜드의 모습이 달과 6펜스 사이에서 교차되기도 한다.

예술과 현실은 상생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인가? 폴 고갱의 삶을 모델로 한 이 소설은 서머싯 몸의 예술론과 사랑, 양심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서술로 혹은 대화로 나타나 있다. 의사였다가 예술가가 된 서머싯 몸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의 고민이 진하게 투영되었음을 짐작게 한다.

서머싯 몸은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군의관으로 근무하다가 첩보부원이 되어 혁명하의 러시아에 잠입 활약했다. 그런 다양한 경험이 녹아 있는 그의 작품에는 세기말의 가치관과 철학이 묻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날카로운 해석과 비판, 세속사회의 속물성과 위선이 풍자되기도 한다.

정상적인, 혹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다가 가난함을 감수하고 기이한 예술인의 삶을 감행한 찰스 스트릭랜드. 여름휴가를 다녀온 어느 날 편지 한 장만을 가족에게 남기고 파리로 떠난다. 가정을 버리고, 친구 부인의 사랑을 외면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일 등은 '예술은 삶의 안녕 위에 펼쳐질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독자들의 의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스트릭랜드가 인간의 예의와 양심, 의무를 포기하고 다다른 인생과 예술의 종착지는 타히티다. 그곳에서 그린 그림은, 작가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는 사후에 천재 화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실에서 버림받은 스트릭랜드 부인은 삶의 흔적을 찾는 비평가들의 방문을 받고, 스트릭랜드의 삶을 조금은 미화하여 증언한다.

현실적 삶이 먼저냐, 예술이 먼저냐에 대한 문제는 예술인 개개인의 철학이며 선택이다. 예술인과 모든 사람들은 항상 '달과 6펜스'를 가슴에 안고 선택의 순간순간을 살아야 하는 운명의 굴레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읽으면 예술과 이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예술과 이상이 되는 삶을 늘 고민하며 추구하는 인간의 또 하나의 본성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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