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아 울다 서거정
예전엔 매를 맞고도 운 적이 없었는데 兒昔逢笞不泣之(아석봉태불읍지)
지금은 왜 새삼스레 눈물을 흘리느냐 兒今垂淚復何爲(아금수루부하위)
어머니 힘이 쇠해 매 맞아도 안 아프니 只緣母力衰猶甚(지연모력쇠유심)
아프지 않은 것이 어찌 아니 슬프리요 兒不痛時得不悲(아불통시득불비)
*원제: 伯兪泣杖(백유읍장: 백유가 매를 맞고 울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것은 절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화를 풀기 위한 분풀이 식 매는 결코 안 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의 매라면 교육상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금으로도 못 바꿀 어머니 매는/ 착한 사람 되라고 때린 것이다/ 잘못함을 못 깨닫고 울고 있다면/ 어머니는 얼마나 섭섭해하실까." 버들잎 푸른 희망을 세상에 전파한 불우한 꼽추시인 서덕출 선생의 '어머니의 매'라는 동시 일부다. 여기서도 볼 수 있듯이 유교문화권에서는 대부분 '사랑의 매', 특히 어머니가 가슴 찢어지는 심정으로 휘두르는 '사랑의 매'에 대해서는 토를 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므로 옛날 문헌을 뒤적이다 보면 어머니의 매와 관련된 이야기가 적지 않다. 위에서 인용한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시도 어머니의 매와 관련된 백유읍장의 고사를 그 밑바탕에 깔고 있다. 따라서 고사에 대한 이해가 시 이해를 위한 기본 전제다.
백유가 잘못을 저지르자 그 어머니가 매질했더니, 백유가 어깨를 들먹이며 흑흑 울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지난날에 네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내가 매질을 하지 않았더냐. 그래도 너는 단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새삼스레 이렇게 우는 것은 어째서이냐?" 백유가 대답했다. "지난날 제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매질하셨고, 그때마다 저는 몹시도 아팠더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머니의 힘이 쇠약해지셔서 아무리 힘껏 때려도 하나도 아프지가 않사옵니다. 그게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어머니!" 언제 들어봐도 가슴에 쿵하고 큰 돌이 떨어지는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다.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시라는 운율의 형식 속에다 압축적으로 담아낸 위의 한시도 감동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사적인 이야기 하나만 보태자.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올해 아흔이 되신 우리 어머니를 생각한다. 한창때 마늘 열두 접을 머리에 이고 15리 떨어진 영천 장까지 대수롭지 않게 왔다 갔다 하셨던 분이지만, 지금은 애호박 하나도 힘에 겨워서 가쁜 숨을 몰아쉬신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어머니는 이렇게 변하셨는데, 나는 환갑을 넘겼는데도 여전히 철이 들지 않아 요즈음도 수시로 매 맞을 짓을 하며 살아간다. 그때마다 어머니에게 호된 매를 맞고 싶다. "어머니, 이번 어버이날에도 선약이 있어서 도저히 고향에 못 갈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해요. 어머니, 제발 저를 좀 힘껏 때려주세요. 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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