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략)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현직 대통령 탄핵과 새 대통령 선출이란 역사적 갈등과 아픔 속에 있는 현 시국을 바라보며, 함석헌 선생의 '그대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가 떠올랐다.
지난 주말에는 유학 시절 동기 모임이 있었는데, 장소가 뉴욕에서 조금 북쪽으로 올라간다는 말에 솔깃하여, 하던 일들을 모두 미루고 따라나섰다. 봄꽃과의 짧은 만남이 못내 아쉬웠던 터라, 북쪽이면 연한 꽃봉오리들의 숨소리를 더 들을 수 있겠다는 욕심으로 길을 나섰다. 유학 시절 기숙사 생활을 같이했던 친구들이라 서로 안부를 나누고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제일 늦게 호텔에 나타난 막내 후배는 미안한지, 자신의 빠듯했던 일정을 설명하면서 바쁜 와중에도 대통령 재외 국민투표를 하고 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투표소가 모임 장소와는 정반대 쪽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다녀왔다기에 우리는 박수를 보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선과 각 후보자들에 대한 의견들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각자의 견해가 얼마나 다른지 자칫 모처럼의 만남이 정치적 이견으로 분열될 양상이라 그만하기로 하고, 각자가 소신껏 투표하자고 결론을 지었다.
지난달 25일부터 30일까지 엿새 동안 실시된 재외 국민투표에서, 뉴욕과 뉴저지, 필라델피아 세 곳에 참여한 유권자는 9천690명으로 등록 유권자 1만3천716명 가운데 70.65%가 투표했다. 전 세계적으로 재외 국민 약 22만 명이 참여하여 투표율 75.3%라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국정 농단 사태, 대통령 탄핵, 북한의 핵 위협, 촛불과 태극기 집회의 양극화 등 국가가 극도의 혼란한 상태에서 치르는 투표인 만큼 국내외 전 국민들에게 최대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한인들은 몇 시간씩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달려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다음 주에 결정될 차기 대통령 당선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어떤 조직이나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이유는 모두 사람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사람으로 인해 무너진 우리나라의 기상이 새 사람으로 인해 다시 일어서는 것을 보고 싶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물론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으로 국정을 돌보는 자들이어야 한다. 즉 자신의 사리사욕을 멀리하고 넓은 시야로 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헌신된 자세의 사람들이 이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역사의 큰 전환점이 될 이번 대선을 치르며, 새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경제인은 경제인대로,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각자의 바람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각양의 민심을 시원하게 녹일 맞춤형 공약을 내놓기 위해 각 선거 캠프에서는 밤잠을 설치며 아이디어 전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더 강하고 잘사는 나라로 만들어 주겠다는 대통령도 좋지만, 이번에는 마음고생 많이 한 국민들을 위로하며 새로운 신뢰의 싹을 틔울 수 있는 진실한 대통령, 함석헌 선생이 찾던 '그 사람'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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