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50㎝ 두께 투명한 빙판 아래 수심 10m 깊이까지 훤히 보여
2) 높이 4m 파도가 얼어붙어 겨울 호수의 자연 조각 장관
3) 부르한 바위 석양'밤하늘의 별 "이 순간 위해 달려왔구나" 감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장장 75시간, 4천㎞를 달려 도착한 이르쿠츠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호수인 바이칼이 인접해 있어 천혜의 자연경관과 유서 깊은 문화유산으로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이르쿠츠크는 현재와 과거가 조화를 이루는 도시답게 100년이 넘은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으며, 이르쿠츠크 시내를 관통하는 앙가라 강과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흐르고 있어 더욱 정감이 가는 도시였다.
◆호수 안 섬만 22개…지프로 빙판 위 달려
'시베리아의 푸른 눈'이자 '러시아의 갈라파고스'라는 이름의 바이칼 호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여정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칼 호수는 남북 길이 636㎞, 최장 폭 79㎞, 최단 폭 27㎞, 둘레 길이 2천200㎞, 깊이는 1천742m로 세계 최대의 호수이다. 약 336개의 강이 바이칼 호수와 연결되어 강물이 흘러들어오지만 밖으로 나가는 수로는 앙가라 강 단 하나뿐이라는 것이 인상적이다. 저수량 2만3천㎦의 바이칼 물은 지구 상에서 가장 깨끗한 청정수로 음용이 가능하며 산소 함유량이 많고 각종 미네랄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희귀 어종이 다양하다.
호수 안에는 총 22개의 섬이 있는데, 가장 큰 것은 길이 72㎞인 알혼섬(Olkhon)이다. 바이칼이라는 명칭은 몽골어로 '자연'을 뜻하는 바이갈(Baigal)에서 유래되었지만 부랴트어로는 '풍요로운 호수'라는 뜻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르쿠츠크에서 250㎞ 떨어져 있는 바이칼 호수 교통편은 시외버스터미널이나 호텔에서 쉽게 연결해 주고 있다. 하얀 눈모자를 쓴 자작나무들이 가느다란 도로 가장자리에 병정처럼 서서 은빛을 뽐내며 하늘거리고 있었다. 이르쿠츠크에서 5시간을 달린 후 해안 선착장에서 얼음을 깨며 달리는 바지선을 탔다. 시베리아의 칼바람을 맞으며 망망대해 같은 바이칼 호수의 심장 알혼섬으로 갔다. 알혼섬의 크기는 730㎢(제주도 면적의 약 40%)이며, 동시베리아 남부 바이칼 호수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바이칼 호수 안에 있는 섬 가운데 가장 크며, 섬 안에 또 호수가 있다.
알혼섬에 도착한 후 아우직 4륜구동 지프를 타고 비포장 길 40㎞를 1시간 달렸다. 통나무로 지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저녁 연기가 솟아오르는 후지르 마을에 도착했다. 섬 안쪽으로 들어가면 통나무집들과 목장, 슈퍼마켓 등이 있으며 외국인 관광객도 흔히 볼 수 있다. 숙박업소를 통하면 바이칼 호수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여름에는 주로 배를 이용하고 겨울에는 아우직 지프로 빙판 위를 달리면서 호수의 작은 섬들을 모험할 수 있다.
겨울밤에는 높이 4m까지 치솟는 파도가 그대로 얼어붙어 호수면이 얼음조각 전시장으로 변한다. 청정 호수 바이칼이라는 명성답게 150㎝ 두께의 빙판 아래로 수심 8~10m까지 훤하게 볼 수 있었다. 구소련시대에는 얼어붙은 호수 위에 임시 철도를 깔고 통행하는 차량들을 위해 교통표지판까지 세웠다는 이야기가 풍문이 아니라 진짜같이 느껴진다.
◆바이칼에서 만난 샤머니즘의 모습들
숙소에 짐을 던져놓고 알혼섬 후지르 마을 뒷산에 자리하고 있는 부르한 바위를 찾았다. 부르한 바위는 영험하다는 소문 덕에 모든 샤먼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바이칼 어디를 가나 샤머니즘의 실상을 만날 수 있다. 언덕을 넘는 고갯마루에는 돌무더기 성황당이 있으며, 바이칼을 굽어보는 곳에는 '세르게'라는 13개의 기둥이 간절한 소망을 담은 오색 천을 휘감고 서 있다. 석양이 질 때쯤 부르한 바위에서 바이칼 호수를 바라보며 바람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신이 어깨를 감싸 주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순간적으로 붉은 기운이 온몸에 돌아 가슴이 벅차올라 나도 모르게 "아! 정말 행복합니다. 이 순간을 위해서 그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이곳에서 제 마음속에 새로운 전설 하나를 만들어주시는군요" 하고 감탄했다.
바위에 종유석처럼 달려 있는 고드름과 옥빛으로 빛나는 얼음장 위에 대구도시철도 3호선 모노레일 깃발을 들고 세계 최고 걸작 '하늘열차 SKY RAIL'의 안전을 기원하며 크게 함성을 질렀다. 추위를 피하려 완전무장을 했는데도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장갑을 벗는 순간 손가락이 빨갛게 얼어버리는 듯한 매서운 맛을 보여준다.
알혼섬 사람들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러시아식 전통증기사우나 '반야'(Banya)를 통나무집에서 체험했다. 반야는 통나무집 벽돌 화로에 자작나무 장작불을 지펴 열이 오르면 몸에 물을 끼얹으면서 즐기는 사우나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자작나무 줄기를 물에 적셔 아플 정도로 온몸을 때리는데 혈액순환에 좋다고 한다. 땀을 흠뻑 흘리며 사우나를 하다 찬물을 뒤집어쓰다 보면 여행자의 지친 심신에 새로운 기운이 솟아오르는 걸 느끼게 된다. 저녁식사로 오물이라는 물고기를 먹으며 다국적 여행자들과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차가운 밤하늘에 쏟아지는 은하수를 볼 수 있다.
◆짖궂은 날씨가 준 새로운 교통수단 경험
알혼섬을 떠날 때에는 기온이 뚝 떨어져 쇄빙 기능의 바지선이 운행되지 않았다. 눈벌판을 달려 바이칼의 또 다른 가장자리인 얼음 위에 도착했다. 바람을 맞으며 기다리자 저 멀리 눈보라를 일으키며 호수 위를 미끄러지며 달려오는 보트가 보였다. 보트 뒤에는 거대한 선풍기 같은 프로펠러가 돌아가고 있다. 9명밖에 타지 못하는 소형이지만 30여 분을 달리니 이르쿠츠크의 또 다른 선착장에 도착했다. 짓궂은 날씨 덕분에 알혼섬에 들어올 때와는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바이칼 호수를 떠나면서 꼭 보고 가야 할 3가지를 꼽으라면 나는 "맑고 투명하고 선명한 바이칼의 얼어붙은 겨울호수의 조각 얼굴과 저녁 시간 해가 지는 석양의 부르한 바위의 신이 내린 바이칼 호수의 장엄한 모습, 그리고 깊은 밤하늘에 초롱초롱 영롱히 빛나는 수많은 별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귀환한 이르쿠츠크의 밤 불빛이 괜스레 반갑다. 바이칼 호수의 고요함에서 돌아와 도시의 풍경이 우리가 사는 곳과 익숙해서 그런지 묘한 안정감이 들었다. 이르쿠츠크역에서 낭만의 도시 모스크바로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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