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민주주의는 지극히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바라는 바를 묻자 한 시민이 "분열된 국론을 통일하기 바란다"고 답하는 모습을 봤다. 어떤 마음으로 이런 답을 했는지는 충분히 알겠으나 사실 매우 위험할 수 있는 말이다.

국론은 통일해야 할 대상도 아니며, 국론을 통일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민주주의가 어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떠한 사안이라도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의견이 제시된 배경과 연유를 충분히 파악한 뒤 지난한 설득과 협상을 거쳐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때론 불합리하고 불필요해 보일지도 모르는 과정들을 거쳐야 한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신념에 한 번 더 의문을 갖는 것이 민주주의의 출발이다. 그래야 대의(大義)를 빌미로 전체주의로 빠지거나 독재자가 탄생할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남북통일에 대한 의견조차도 서로 다를 수 있다. '통일은 너무도 분명한 명제여서 이론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이는 '주변 열강들의 이해관계와 통일 비용 등을 감안한다면 굳이 통일해야 하는가 의문이 든다'고 말할 수도 있다. 304명이 목숨을 잃은 세월호 참사도 그렇다. 사고 원인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미수습자 유해를 찾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인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이는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심지어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돈이 많이 든다고 반대하기도 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차오르는 바닷물을 피해 그나마 마른 공간을 찾아 한없이 웅크렸을 아이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그런 아이들을 두고 전혀 다른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세월호 사건의 재판기록에 따르면 세월호 학생들도 죽기 전에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학생들이 무서워하며 죽음을 맞이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핸드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대학교수가 강의 중 한 발언이다. 논란이 일자 해당 교수는 "사람의 소통을 방해하는 것이 핸드폰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다 예시를 든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즈음해서 자신이 보수임을 밝히고 태극기 집회에 열심히 참석했던 어떤 이에게 "왜 탄핵에 반대하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우리나라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박정희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모두 그런 분들이다. 나라가 잘되려면 강력한 통치력으로 국론을 한데 모으고, 사사로운 이해관계는 무시해야 한다. 촛불 집회는 북한 사주를 받은 일부 선동 세력의 작품이다."

민주주의의 생명은 포용성에 달려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 싶은 의견까지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끝까지 반대하는 사람도 하나의 의견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야 블랙리스트 따위가 생기지 않는다. 반대파라고 꼬리표를 달아서 아예 상대도 안 해 버리면 앞선 정부와 다를 바 없어진다.

'적폐 청산'에 동감한다. 그간 당연스레 여겨졌던, 그래서 기득권이 돼 버렸던 폐단은 과감히 없애야 한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청산의 대상은 적폐이지 사람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잘못이 있다면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밟아 응당한 처벌을 받도록 하는 것이 옳다. 아울러 제도적 결함이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아 적폐로 변질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절차는 민주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새 대통령의 행보 하나하나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히 그래야 했던 것인데, 지난 9년간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던 탓에 오히려 생경스러울 정도다. 대통령 사인을 받겠다며 책가방에서 종이를 주섬주섬 꺼내는 초등학생 곁에 쪼그려 앉아 흐뭇하게 지켜보는 대통령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새 정부를 둘러싼 국내외 여건이 녹록지 않다. 미안하고 안쓰러울 정도다. 그래서 더욱 기대를 품게 한다. 초등학생들이 장래 희망란에 '대통령'이라고 쓸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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