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대통령과 짬짜면

매번 결단(?)이 필요하다. 순간의 선택이 오후를 좌우한다. '짬뽕이냐 짜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예정된 고민이지만 그래도 중국집 문턱을 넘는다.

짬뽕은 바다와 닮았다. 싸구려 냉동 홍합일지라도 식감과 맛은 갯벌 내음을 창자 끝까지 전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마른 오징어 다리도 초반 젓가락질을 피하지 못한다. 재료를 알길 없는 벌건 육수는 또 어떤가. 매운 고추기름에 땀을 뻘뻘 흘리다 보면 전날 정 붙인 숙취도 걸음아 날 살려라다.

짜장면. 아삭거리는 양파의 식감은 5월의 푸름 그 자체다. 검댕이 춘장을 뒤집어쓴 채 감자인 양 하는 돼지비계라도 득템할 땐 팔공 한우 부럽지 않다. 강산이 네 번이나 변했지만 맛은 어릴 적 그대로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늘 운동회 날이면 500원 짜장면으로 내리사랑을 표현하셨다.

하지만 덜컥 '전 짬뽕요' 하는 찰나에는 메뉴판이 접히기도 전에 후회가 밀려온다. '이 여자랑 결혼하지 말 걸'이란 한숨보다 더 깊다.

중국집에선 항상 햄릿이 된다. 짬짜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행보에서 짬짜면의 미학이 엿보인다.

대통령은 5'18 기념행사 때 애국가도 힘차게 불렀고 임의 행진곡도 열창했다. 대선 기간만 해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북한 등의 문제에서 짬뽕, 짜장 둘 중의 하나를 고르는 듯했으나 결국 국민 통합 관점에서 접근했다. 안보 불안을 느끼는 보수에게는 북한을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불신을 덜었다. 사드도 무작정 '안 돼'가 아닌 법적 절차를 따져 보겠다는 뜻을 밝혀 논란을 종식시킬 문도 활짝 열어 뒀다.

측근들도 대통령의 짬짜면(통합) 행보에 걸음을 보탰다. 양정철'전해철'이호철을 일컫는 삼철 외 많은 창업 공신들은 말없이 대통령 곁을 떠나갔다. 자리를 탐하지 않았다. 잊힐 권리를 달라는 말을 남긴 채 짬짜면 그릇을 비워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미카와 무사와 닮았다. 미카와 무사들도 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위해 목숨 걸고 전장을 누볐지만 전공(戰功)을 대가로 '한자리' 차지하려는 응석을 부리지 않았다. 이들은 훗날 도쿠가와 막부 300년, 에도 시대 번영의 밑거름이 됐다.

이제 빈 그릇에는 맛있는 요리만 채우면 된다. 국정 운영을 잘할 수만 있다면 짬볶밥(짬뽕+볶음밥)이든 짜탕수(짜장+탕수육)든 상관없다.

국민들은 진보정권, 보수정권 가리지 않고 국민을 편안하게 해 주는 대통령을 원한다. 보수가 진보를 향해 '종북'으로 매도하고, 진보가 보수를 향해 '꼴통'으로 비난하는 그런 낡은 틀은 문재인정부에선 없어져야 한다. 안보는 보수로, 경제와 복지는 진보로 하는 짬짜면 정부이면 어떤가.

문재인정부의 대한민국은 케케묵은 이념들을 한 그릇에 담아내고 자유민주주의의 반석 위에 꼿꼿이 선 실용주의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 재감사 등 전 정권 들여다보기가 자칫 정치 보복으로 변질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여야도 서로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며 으르렁대는 물어뜯기 정치를 걷어내야 한다. 야당은 강력한 감시견 역할을 수행하되 밀어줄 건 시원하게 도와야 한다. 갈가리 찢긴 민심을 아우르는 시대적 과제는 이미 고유명사가 됐다.

취임 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보이고 있다. 후보 시절, 상황 결정 능력과 통합 능력이 다소 부족해 보였던 것과는 달리, 정권 초기 국무총리와 청와대 주요 인사 그리고 내각 선임 과정에서 기민함과 탕평 인사도 박수를 받고 있다.

후보 문재인보다는 대통령 문재인이 높이 평가받는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더 큰 희망을 갖게 한다.

좌우 날개로 나는 새까지 끌어들일 필요 없이 국민 대통합의 문으로 왼발, 오른발 뚜벅뚜벅 걸어가는 문재인 대통령을 기대한다. 오늘 점심은 짬짜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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