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도(道)를 버리겠다는 말 한마디만 하여도 죽음을 면하고 살아날 길이 있으니 그리하라."(경상도 감사 서헌순) "도(道)가 나로부터 나왔으니 나 스스로 당하리라."(동학 창시자 최제우)
대구 도심에 동학, 오늘날 천도교의 수난사를 일깨워주는 세 번째 흔적이 지난 26일 생겼다. 바로 동학 창시자인 최제우가 처형된 관덕당(觀德堂) 터의 일부로 여겨지는 현대백화점 앞에 건립된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비'이다. 순도비 건립으로 대구에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첫 토종 종교라는 평가를 받은 동학을 기리는 흔적이 세 곳이다. 동상과 나무에 이어 세 곳으로 늘었다.
처음은 최제우가 도를 버리지 않고 따르고 지키다 죽은 순도(殉道) 100주년을 맞아 1964년 달성공원 안에 들어선 동상이다. 두 번째는 최제우가 갇힌 경상감영의 감옥 부근 즉 오늘날 종로초등학교 안의 수령 400년 넘은 최제우 나무다. 서헌순 감사가 최제우에게 조정의 명령으로 효수형을 내리자 잎사귀에서 수액이 떨어졌다는 사연을 간직한 회화나무에 2012년 대구시가 이름을 붙이면서다.
그런데 순도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0년대, 관덕당 부근에 있던 상제교(上帝敎) 교당 안에 처형 전말을 적은 비석이 위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초 최제우 순도 처형 터를 사들이고 비도 세웠을 것이지만 뒷날 주인이 바뀌면서 없어진 모양이다. 지금도 비석의 존재를 파악할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이번 순도비 건립으로 대구는 잊힌 역사를 기릴 새 발자취를 하나 더 갖게 됐다. 순도비와 회화나무, 동상으로 이어지는 길. 동학 수난사를 증언하는 생생한 흔적이다. 동학은 그동안 세상과 너무 멀어졌다. 유학의 본고장인 경상(경북)에서, 그것도 유학 출신이 기존 유학과 어긋나는 다른 길을 걸으며 도를 어지럽힌 '좌도'(左道)의 죄를 저질렀으니 그랬을 만도 하다.
그가 1860년 깨닫고 인간 평등을 외치며 노비 해방도 모자라 종을 딸과 며느리로 삼는 실천의 삶을 살았기에 부패한 유학 세력으로서는 그냥 둘 수 없었을 터였지만 지금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니 어째서인가. 유독 심한 영남 유림의 탄압과 핍박 속에 1864년 3월 10일 대구 형장에서 사라졌지만 가르침은 살아 특히 식민 시절, 1919년 3'1만세운동 등에서 숱한 빛을 남겼다. 70억원 들인 순종어가길과는 다른 '최제우의 길'을 기대하면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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