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유라, 수갑 채우자 '시무룩'…K-팝 뮤비 보며 초조감 달래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31일 오후 검찰 호송팀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유라 씨는 2017년 5월 30일에서 31일로 넘어오는 시간의 길목을 백 년보다 더 긴 하루처럼 느끼는 듯했다.

시간이 흐를수록,한국 땅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표정에선 불안과 초조함이 뚜렷이 드러났다.

정 씨는 2015년 7월 2020년 도쿄올림픽 재기를 꿈꾸며 독일로 떠난 지 약 23개월 만에 귀국 항공편에 몸을 실었지만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여정이었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강제 귀국길.정 씨는 한편으로는 체념한듯했다.

체포된 뒤 150일간의 '버티기'도 결국 아무런 보상이 되지 못했다.온갖 비난과불안한 앞날만 남겼을 뿐이다.특검은 피했지만,여전히 법의 칼날이 그를 기다리고있다.

'비선실세' 또는 '라스푸틴(제정러시아의 붕괴를 가속한 요승)'이라는 닉네임이붙은 엄마에 대한 원망이 쏟아졌을 법도 하다.

정 씨는 덴마크 시각으로 30일 오전 올보르구치소를 떠나 한국으로 향했다.덴마크 경찰이 그와 동행했다.

코펜하겐 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정 씨는 예상외로 표정이 그리 어둡지 않았다.

웃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지난 4월 올보르 지방법원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때보다 살도 약간 오른 모습이었다.

윙크하는 스마일 얼굴이 그러진 흰색 티셔츠는 정 씨의 복잡한 심경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 씨는 코펜하겐 공항을 거쳐 암스테르담에서 대한항공 926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덴마크 당국과 네덜란드 당국은 정 씨를 일반 승객이나 취재진과 맞닥뜨리지 않도록 '특별대우' 했다.

항공기를 타고 내릴 때 일반 승객들이 이용하는 탑승구가 아닌 별도의 트랩을 사용했고,공항에서 이동할 때는 승합차량이 활주로에 대기하고 있다가 정 씨를 태우고 다녔다.

다음 항공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일반 승객이 접근하지 못하는 공항 보안구역의 별도 시설에서 머물렀다.

겉모습만 보면 인기 연예인이나 유명 정치인과 같은 VIP를 위한 '특별경호'를 연상케 했다.

정 씨의 신분과 대우는 암스테르담 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대한항공 926편을 오르면서 180도 달라졌다.

정 씨를 송환하기 위해 현지에 파견된 검찰 관계자들은 정 씨를 다른 승객들보다 앞서비행기에 태운 뒤 곧바로 체포 영장을 집행했다.

범죄인 호송 규칙에 따라 정 씨에게는 수갑이 채워졌고 미란다원칙 등 유의사항이 통지됐다.대한민국 법이 적용되는 국적기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정 씨는 송환 대상에서 '피의자'가 된 것이다.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어 보였던 정 씨는 금새 시무룩해졌다.

정 씨는 일반 승객들과 완전 격리되지는 않았다.

다만 일반 승객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 씨의 좌석은 이코노미석인 항공기 왼편 맨 뒤에서 두 번째 줄 창가 자리로 정해졌고,옆자리에 여성 검찰 수사관이 앉는 등 검찰관계자들이 정 씨를 포위하듯 빙 둘러 앉았다.

정 씨는 수갑이 채워진 손을 담요로 가린 채 창밖을 응시하며 다른 사람들과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애써 피했다.

취재 기자가 다가가 한국으로 귀국하는 소감에 대해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올보르 법정에서 기자들이 묻지도 않았던 내용까지 줄줄이 얘기하며 "나는 모른다","모든 것은 엄마가 다 했다"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던 당당함(?)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일반 승객들도 정 씨의 탑승 사실을 알고는 신기한 듯 정 씨를 바라봤다.

대한항공 승무원은 기내방송을 통해 "기내에서 모든 사진 촬영은 금지되며 응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또 정 씨 좌석에서 가장 가까운 왼쪽 맨 뒤 화장실에 '사용불가(수리요망)'이라고 적은 빨간 스티커를 붙여 일반 승객들의 이용을 금지했다.이 화장실은 사실상 '정유라 전용'이었다.

정 씨는 수갑을 찬 손으로 직접 세관 신고서를 작성했으며,검찰은 식사를 할 때와 화장실 갈 때만 수갑을 풀어줬다.정 씨가 화장실을 이용하는 동안엔 여성 검찰 수사관이 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오랜 비행으로 피곤이 몰려올 법도 했지만 정 씨는 쉽게 잠을 청하지 못했다.

정 씨는 K-팝 뮤직비디오를 보며 초조한 마음을 달래는가 하면 항공기 위치를 보여주는 모니터의 운항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기내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이륙 한 시간이 지나 첫 번째 기내식이 제공되자정 씨는 비빔밥을 선택했지만,절반도 먹지 않았다.

착륙 두 시간여를 앞두고 2차 기내식이 제공됐을 때는 흰쌀죽을 골랐지만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출발한 항공기가 11시간 가까운 운항을 마치고 인천공항에착륙하자 정 씨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불안감으로 좌불안석인 모습이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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