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빠른 시계와 시차

가급적 간소한 세간살이를 선호하기에 집에 시계가 없었다. 그러다 역시 시계는 하나 있어야겠다 싶어서 작고 단순하게 생긴 전자시계를 거실에 하나 들여놓았다. 문제는 이 시계의 시간이 빠르게 간다는 것이다. 살펴보니 대략 한 달에 3분쯤 빨리 가는데, 시계 뒷면에 4개나 있는 버튼을 이리저리 눌러보며 시간을 고치는 것도 귀찮은 일이어서 되는대로 살다 보니 빠른 시계가 알려주는 시간에 따라 살면 정시와의 시차에 따라 외출의 준비성이 달라지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였다.

이 과정은 시차에 따라 대략 4단계 정도로 구분할 수 있는데, 빠른 시간 1기는 정시 대비 시차가 3분 정도 빨라지는 첫 한 달에 나타난다. 이때는 정확한 시계와 별 차이가 없어서 시차를 의식하지 않고 무심하게 살아도 큰 문제가 없는 때이다. 빠른 시간 2기는 4분에서 7분 정도 시차가 나는 시기인데, 이때는 빠른 시간대와 정시와의 차이를 계산하며 약간 긴장하는 시기이다. 빠른 시간 3기는 8분에서 10분 정도의 시차가 생기는 단계인데, 이때는 빠른 시계에 맞춰 외출 준비를 끝마치고도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여유가 있는데다가 정시와 시계의 시차를 10분으로 생각하여 계산도 수월해서 은근히 여유를 가지게 되는 시기이다. 그래서 3기의 시계를 보면 마음이 좀 느긋해진다. 빠른 시간 4기는 10분 이후 12분까지이다. 이때는 시계가 정시와 10분 이상 어긋나면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비칠 것 같아 마음이 좀 불편해져서 시간을 고쳐야겠다고 결심을 하는 시기이다. 그렇지만 게으름의 관성으로 결심만 하다가 12분이 빨라진 후에야 시계를 리셋하곤 한다.

요즘은 노력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입장에서 성적은 일관성 있는 기준으로 누구에게나 엄격하고 보편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노력한 사람에 대한 보상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노력이 가치 있는 덕목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좀 더 바라기는 노력을 통해 우수한 실력을 갖춘 학생들이 사회에서 더 큰 가치를 인정받아 의미 있는 일을 하기를 바란다.

안타깝게도 젊은이들 사이에선 출신 성분에 따른 흙수저, 금수저 논쟁이나 헬조선과 같이 세태를 비하하는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이런 표현은 정당한 노력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를 비판하는 동시에, 어찌해도 성공할 수 없으니 더 이상 노력은 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네가 잘못된 것은 모두 세상 탓이니 오늘을 즐기고 편하게 살며, 이들은 사회가 책임지라'는 식의 유사 계몽주의자들의 말에 공감의 찬사가 쏟아지고, 이 시대의 멘토라는 분들은 온통 힐링과 평등을 외치고 있다. 반면 젊은이들에게 노력하라는 아픈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잘 안 보인다. 물론 열정페이와 같이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병폐를 비판하고 개선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몫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시간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모두 같은 기준을 가지고 있을 때 제 기능을 발휘하는 약속이다. 그래서 표준시간과 비교해서 내 시계가 틀렸다는 것을 손쉽게 알 수 있다. 반면 내 생각이 세상의 일반적 가치관과 얼마나 다른지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추측컨대 노력의 가치에 대한 세간의 시선과 내 생각 사이에도 제법 큰 시차가 있는 것 같다. 누구나 노력과 땀의 가치를 인정해주던 시절을 살아오다, 어느 날 문득 보니 노력이 '노오오오력'이라는 유행어로 비하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간극에 따른 빠른 시간 4기 느낌의 시차는 나를 불편하게 한다. 혹시 내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닐까,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사람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나이가 들며 완고해지고 옛날을 그리워하는 노화 과정에 따라 3분 정도는 시차가 생겼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남아 있는 9분 정도의 시차는 노력의 가치에 대한 나의 믿음을 반영하고 있다. 이 시계를 고칠 일은 없을 것 같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