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의회도 과반 의석 정당 없어
소수당과 입법 사안별 연대 결정
민주당, 英 보수당보다 사정 딱해
야권과 협치 틀 만드는 것이 시급
취업 준비생이라면 꼭 알아야 할 시사용어가 최근 하나 추가됐다. '헝 의회'(hung parliament)라는 말이다. 'hung'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매달려 있다'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 의원내각제에서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는 의회를 일컫는다. 지난 8일 실시된 영국 조기 총선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 집권 보수당이 정치적 도박을 걸었다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 것이다. 제1야당 노동당보다 20% 높은 지지율만 믿었던 오만이 문제였다. 그나마 다행은 과반에 7석 모자란 보수당이 민주연합당(DUP)과 연정으로 상황을 돌파할 수 있다는 점.
하지만 치러야 할 정치적 비용은 만만찮다. 불과 10석에 불과한 DUP의 요구를 다 들어줬다간 자칫 정치판 자체가 깨질 우려가 있다. DUP는 북아일랜드의 개신교 우파 정당으로 성 소수자 권리, 동성 결혼, 낙태를 반대하고 사형제 도입을 찬성한다. 같은 우파인 보수당보다 훨씬 강경하다. 무엇보다 DUP 약진으로 1998년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중재로 마련된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이 흔들릴 수 있다. 협정에 따라 이제껏 영국 중앙정부는 DUP와 가톨릭 중심의 좌파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로 구성된 신페인당 사이를 중재하며 중립적 태도를 지켜왔다. 만약 중앙정부가 DUP 쪽으로 기울 경우 신페인당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아일랜드의 권력균형 붕괴는 과거 1970, 80년대 유혈 충돌 악몽을 재현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느슨한 연정 형태인 '신임과 보완'(confidence and supply) 방식. DUP가 내각에 참여하지 않고, 일반 입법 때 사안별로 연대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거대 여당이 소수 야당과 협치를 통해 돌파구를 열어가는 정치적 상상력이 놀랍기만 하다.
영국식 잣대로 보면 우리나라 국회도 '헝 의회' 처지다. 어느 정당도 과반에 훨씬 못 미친다. 이른바 '여소야대' 상황. 하지만 대통령중심제라 굳이 연정을 통한 과반 정부가 없어도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 문제는 국정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굴러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과의 협치를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취임 첫날 제일 먼저 자유한국당 당사를 전격 방문했다. 추가경정예산안을 제출하곤 이례적으로 국회에서 직접 시정연설까지 했다. 그러나 인사청문 정국에서 협치는 길을 잃어 버렸다. 야당의 반대에 부딪힌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강경화 외교장관 임명 건.
"저는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 야당도 국민의 판단을 존중해 달라." 대통령은 높은 국민 지지율을 근거로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야당은 당연히 발끈했다. '여론 정치'(going public)가 대의민주주의라는 헌법 가치와 배치된다는 것이다.
인사를 둘러싼 충돌은 일단 대통령의 승리로 귀결될 전망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오히려 정반대 양상으로 전개될 소지가 크다. 당장 80%가 넘는 대통령 지지율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 여기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단 하나의 법안도 통과시킬 수 없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석수는 과반에 30석이나 모자란 120석. 한솥밥을 먹었던 국민의당(40석)이 도와준다 해도 어림없다. 국회선진화법의 덫을 피하긴 위해 의석 5분의 3, 180석이 필요한 탓이다. 문재인정부로선 '헝 의회' 상황에 놓인 영국 집권 보수당보다 더 딱한 처지인 셈이다. 그렇다면 보수당을 능가하는 정치적 상상력을 진작 발휘했어야 했다. 조각에 앞서 미리 야당 인사 참여를 요청하는 모양새를 갖췄다면 어땠을까. 하다못해 야당으로부터 몇 명을 추천받아 전격 발탁하는 것도 협치 첫걸음으로 괜찮지 않았을까. 궁극적으론 '개혁'을 고리로 연정의 틀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과 바른정당까지 186석을 꽉 묶어 법과 제도를 개혁하자." 때맞춘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의 제안은 그래서 그냥 흘려들을 말이 아니다. 야당과의 협치를 통한 저변 확대야말로 개혁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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