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인물을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이명박 정부 사람으로부터 이 정부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필 MB 정부 사람의 평가인가"라는 말을 들을 법도 했다. '악취미' '놀부 심보'라는 지적도 있겠지만 견제받고 비판받는 것은 정치권력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던가.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57) 전 국회사무처 사무총장 섭외에 나섰다. 몹시 바쁜 듯했지만 시간을 내겠다고 했다. 약속 장소를 문자로만 보내줬는데 시간도 거의 어기지 않고 만나기로 했던 서울 여의도의 한 사무실로 뚜벅뚜벅 걸어들어왔다. 그의 주머니 속 전화기에서는 길 찾는 애플리케이션이 아직도 소리를 내고 있었다. 서둘러 애플리케이션을 끄고 있던 그를 향해 기자는 바로 질문을 던졌다.
-이제 100일이 지난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고공행진 중인데?
▶스스로 성공적이라 자평할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이전 정부가 탄핵을 당했다. 그 때문에 기저효과(앞 정부가 워낙 못했으니 뒤 정부가 상대적으로 빛이 나는 현상을 의미)가 나타났다. 국민과 가까이하려는 소통 노력도 많이 한다.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었다. 이런 것들이 초기 지지율을 높이는 데 큰 힘이 됐다.
-이 정부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은데?
▶탈원전 정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건강보험 비급여를 대폭 조정하는 것 등은 걱정과 우려가 많다. 초기 100일 동안 쏟아낸 이런 정책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과연 소통과 사회적 합의, 그리고 집단지성에 기초했는가? 아니다. 일방적 성격이다. 정책의 형성과 집행과정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과거 정권과 똑같다. 권력 내부에서 은밀하게 준비해서 터뜨리는 형국이다. 인사도 탕평이 없다. 지역 편중뿐만 아니라 코드인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총평이 나쁜데 가장 큰 오류를 꼽는다면?
▶국가재정은 보험 드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국가재정은 건실하게 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돈을 과감하게 쓰지만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지에 대한 계획이 없다. 재정지출이 과소추계돼 있다. 다음 정부에 부담을 준다. 탈원전을 하고 최저임금 올린다고 하는데 도덕적 선의로만 갖고 모든 것을 풀 수 없다. 에너지 문제의 복잡성에 대한 고려가 없고 최저임금 인상 속도도 너무 빠르다. 최저임금이 보통임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중소기업 부담이 커져 결국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노동자를 위한다며 최저임금을 올리는 정책이 결과적으로 노동자를 위하지 않는 정책이 될 수 있다. 서민 생활을 개선해야 한다며 직접 지원을 늘리려 하는데 이것이 당장은 기대치를 주지만 과연 기대만큼 갈 것인가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견제세력인 보수가 궤멸상태인데?
▶보수가 궤멸상태에 이르게 된 1차 책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지난 총선 때 무리를 안 했으면 탄핵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보수는 반공(反共)과 경제성장이라는 자양분을 통해 성장해왔고 이것이 보수의 긍정 자산이 됐다. 하지만 반공을 했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올곧게 못 지켜냈고, 경제성장은 가져왔지만 시장경제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채 정경유착 등의 이탈현상을 나타냈다. 또한 보수의 미덕은 사려 깊고 신중하며 책임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현상은 어떤가? 친박의 비겁함에서 오늘날 보수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다. 뒤에 숨어서 반성하지도 않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런 모습이 보수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무너뜨리고 있다. 기득권 유지에 골몰하고 이해관계에 매몰되고 밥그릇 챙기기만 한다. 이승만'박정희 향수에만 머물러 있다. 미래가치 점유를 위한 노력이 없다.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보수정당에서 난리가 나야 하는데 현 정부에 대한 쓴소리만 쏟아내는 비판 과잉 세력으로만 흐르는 모양새다.
-대통령을 보좌해 본 경험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약 보좌했다면 위기상황에서 어떤 건의를 했겠는가?
▶처음 문제가 터졌을 때 너무 서둘렀고 어정쩡한 사과를 했다. 정무적 판단 실수였다. 사태의 진상부터 제대로 파악했어야 했다. 손가락을 자르려면 팔뚝을 잘라내려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소통과 집단지성으로 통치를 하지 않고 대통령 말 한마디에 의존했다. 위기가 닥치니 결국 와르르 무너졌다. 이제 박 전 대통령 측에서 "무한한 정치적 책임을 느낀다"는 메시지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보수가 살 수 있는 토양이 생긴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의 재기는 가능할까?
▶우리나라 보수정당이 뿌리 깊은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니 수평적 소통이 없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이제 야당이 됐는데 야당은 끊임없이 싸우며 뉴스를 생산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발전동력은 물론 다이내믹한 면이 없다. 새로운 말과 담론도 없다. 왜 그런가? 말 잘 듣는 사람만 공천한 탓이다. 보수정당이 17대 때 개혁공천을 했다. 그것이 바로 2007년 보수의 대선 승리 토양이 됐다. 비상상황인데도 보수정당은 너무나 조용하다.
-정당 얘기를 했는데 국회사무총장도 지냈다. 우리 국회는 어떤가?
▶국회의 힘이 커졌다. 지금 국회가 갖고 있는 견제의 힘이 대단하다. 그런데 국회가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당의 질이나 국회의 질에 대해 나는 모두 의문부호를 던진다. 막스 베버가 정치인의 자질에 대해 얘기했다. 열정과 동태적 균형감, 책임윤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회의원들은 어떤가? 열정이 없다. 신념이나 책임윤리도 부족하다. 편 가르기도 심하다. 우리 국회가 점점 왜소해지는 느낌이다. 국회의원들은 골목 정치에 매몰돼 있다. 국회의원이나 시의원, 구의원 역할이 거의 비슷하다. 동네 막걸리 정치를 한다. 국회의원이 이렇다면 정말 국가적 낭비다.
-국회를 바꿀 묘안이 있나?
▶선거제도가 지역주의화를 심화시키는 소선거구제다. 싹쓸이 문제가 생기게 돼 있다. 선거제도를 이제 바꿀 때가 됐다. 비례대표를 강화하고 중대선거구제로 가야 한다. 정당도 변화가 필요하다. 참여정당으로 변모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정당은 아래로부터의 참여 기제를 못 만들어낸다. 경선을 하고 있지만 지금은 당원을 동원의 대상으로만 인식할 뿐이다. 참여정당으로 가야 한다. 그뿐만 아니다. 싱크탱크가 없다. 지식정당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국고보조금을 싱크탱크 운용에 써야 하는데 지금은 싱크탱크를 여론조사에만 활용한다. 지식정당이 안 되니까 협치가 안 된다. 활발한 토론의 기초 위에 정당이 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해결책은 지식정당이다. 지식정당이 안 되면 정당이 관료화하고 당권 경쟁에 당원들이 매몰된다. 보수정당을 한번 보라. 당원이 거의 60대 이상이다. 당협 행사에 가보면 60대 초반이 말석에 앉는다. 정말 심각한 문제다.
-안 물을 수 없는 질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이 정부에서 또다시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됐는데?
▶무리함이 다소 있었다는 정황이 있긴 하지만 4대강 사업은 실패한 사업이 아니다. 이 정부가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정치적 낙인찍기다. 우리나라 물관리 체계에 상당한 효과를 나타냈다. 후임 정권이 후속 사업을 하나도 안 했다. 지천 관리 등을 해야 했는데 안됐다. 그러다 보니 연속성이 없는 측면이 있었다. 4대강 사업이 갑자기 나온 사업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수조원이 들어가는 강 정비계획이 있었다. 4대강 사업을 하면서 230만t의 산업 쓰레기를 강바닥에서 걷어냈다. 내버려두면 강이 계속 더러워진다. 오염된 강의 밑바닥을 걷어내는 것만 해도 큰 의미가 있었다. 4대강 유역 주민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효과가 없었다면 강 주변 호남 사람들부터 가만히 있었겠는가?
-국정원 댓글사건도 이 정부에서 다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리한 일이 있었다면 그 문제에 대해 마땅히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처리할 때는 공정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때나 노무현 정부 때도 불법도청사건이나 야당 정치인 사찰 문제가 있었다. 그러니까 이 부분에 대한 조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균형을 갖춰야 공평한 것이 아닌가? 이 정부가 적폐청산 TF를 가동한다는데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균형 있는 것인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적폐청산은 필요하지만 제도와 시스템을 손보는 쪽으로 가야 한다. 이전 정부의 잘못을 따지려 하면 안 된다. 직전 정부 10년만 한정해서 적폐를 청산하려 한다면 정치보복으로 비칠 수 있다. 새로운 편 가르기, 또 다른 진영정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사회학을 강의하는 교수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지향할 만한 사회적 모델이 있는가?
▶북유럽이다. 북유럽은 복지국가 1.0과 2.0을 모두 성공시켰다. 경제를 발전시켰으면서도 국민 삶의 질도 탄탄하게 만들어놨다. 우리는 북유럽에서 배워야 한다. 정치는 어떤가? 그들은 진영논리를 극복하고 합의제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우리와 비교가 된다. 우리는 확증편향이 너무 강하다. 낙인찍기와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많다. 현대 뇌과학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그래서 집단지성이 강조된다. 북유럽이 숙의와 협치를 강조하는 것도 이 맥락이다. 우리가 바뀌기 위해서는 개헌이 이 정신에 맞게 가야 한다. 합의제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개헌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개헌을 해서 분권과 협치로 가야 한다.
-북한이 핵과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다. 국정에 참여해본 경험자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보나?
▶북한은 비정상 사회다. 전체주의 국가라서 무너지지도 않고 있다. 북한은 힘과 이데올로기, 두 축을 갖고 강한 통제를 하고 있다. 그러나 통제가 발휘되면 무너지지 않지만 일단 무너지면 순식간에 확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소련과 동독도 저렇게 붕괴될 것으로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나는 북한이 결국 무너질 것으로 본다. 하지만 예측은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무너지기 직전이 가장 위험하다는 점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잘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안보 정책은 어떻게 보나?
▶햇볕정책 2.0인데 취지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현재의 시점이 군사적 긴장 시점이어서 문재인 정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결국 정책을 구현할 환경이 안 되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운전석에 앉겠다며 우리가 주도하는 상황을 만들어나가고자 하는데 이는 현실의 역학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가면 원하는 결과를 못 얻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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