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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추억은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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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의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다. 1학기가 끝나는 날, 통지표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온 동생이 신이 나서 엄마를 찾았다.

"엄마, 나 3등 했어!"

"3등이고 뭐고 이놈아, 지서로 오란다."

아들이 좋은 등수를 받아왔음에도 엄마는 놀란 가슴에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모습이셨다.

그날 정오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우리 집 뒷산에 수상한 굴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며 경찰들이 산으로 올라갔다. 그 시기엔 반공방첩이란 표어가 동네마다 붙어 있던 때였다. 우리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경했다. 경찰이 나뭇가지로 위장해 놓은 토굴의 입구를 발견하고 총을 겨누며 소리를 질렀다.

"손들고 나와."

여러 번 소리쳤으나 아무 기척이 없자 그들은 둔덕의 굴 입구에 있던 나뭇가지를 치우고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참만에 나온 경찰은 그 속에서 쪽지 한 장을 들고 나왔다. 거기에는 우리 동네 남자애들 여섯의 이름이 적혀 있었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들만의 단결을 위해 만들어놓은 출석부였다. 그 속에는 군것질거리와 그릇들도 있었다고 한다.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높이가 낮은 야산이었다. 여름방학을 재밌게 보낼 방법으로 동네 친구들이 모여 저희만의 놀이장소를 만들기로 합의한 다음, 방과 후에 모두 맡은 임무대로 부모님 모르게 삽을 들고 가거나 흙을 퍼 나를 비료부대를 가져가서 몇 날 며칠 땅을 팠다고 한다. 어른들 모르게 엉뚱한 일을 벌이며 얼마나 설레었으랴. 저희만의 세계를 땅속에 숨겨 놓고 즐거웠을 것이다.

이제 동생은 중년이 되고 퇴직을 앞두고 있다. 우리 형제들은 다시 자연 속에서 살자고 약속을 했다. 도시에 살면서 복잡해진 관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노후에는 어린 시절처럼 자연을 가까이하는 생활을 하자고 합의했다. 그래서 한적한 장소를 물색하는 중이다. 앞으로의 시간은 될 수 있는 한 우리의 생각대로 뿌리고 거두는 삶이 되었으면 한다. 적당히 세상과 멀어져서 조용하고 비밀스러운, 작은 행복을 가꾸며 살 것이다. 벌써 풀벌레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고 어려운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모르는 우리만의 기쁨이 거기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에겐 수많은 추억이 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그 추억의 힘이 지금 나이 든 나를 다시 자연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누가 추억은 힘이 없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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