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중섭이 1956년 9월 6일 서울 서대문적십자병원에서 고달팠던 생애를 마감했다. 향년 40세였다. 시신은 무연고자로 처리돼 3일간 방치됐고, 침대에는 밀린 입원비 18만원, 계산서가 놓여 있었다.
이중섭은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0년 동안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치고, 1945년 귀국하면서 일본인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해 함경남도 원산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사업가였던 형이 처형당하고, 소련 평론가들이 이중섭을 '인민의 적'으로 공격하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1950년 12월 원산을 떠나 제주도에 머물 때 황소와 바다를 소재로 한 작품을 그렸다. 그러나 궁핍한 생활을 견디지 못한 아내가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난 뒤 이중섭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무절제한 생활과 과음으로 몸과 마음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제주도를 떠나 대구 향촌동에 머물던 시절 담뱃갑 은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당시엔 그의 그림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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