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 문제로 지지기반 분열
文대통령'민주당의 잘못은 아냐
당황한 집권세력 무기력에 주의
새로운 동력으로 전환 지혜 필요
문재인 정부가 정치의 패러독스에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65%로 떨어졌다. 정치인에 대한 지지율은 상황에 따라 부침이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그 안에 내재한 지지기반의 분열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반대로 표출되는 불만은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 박근혜 정부 초기의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와 비교되는 대표적인 정치의 패러독스이기 때문이다.
동양인들은 정치의 패러독스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패러독스(paradox)를 우리말로 표현하면 '역설'이나 '이율배반'이 되는데, 그 말이 더 어려워서 그냥 패러독스를 사용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낯선 개념이다. 동양에서는 위대한 정치가의 상을 정해놓고 부단히 노력해서 그에 접근하는 것이 정치의 요체였기 때문에 올바른 정치만이 존재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논리적으로 해법을 찾을 수 없는 패러독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서양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를 공동생활의 방법론으로 이해했는데, 이에 따르면 정치에는 여러 길이 있을 수 있고 개인의 선한 의지와 공동체의 정의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정치의 패러독스를 등산에 빗대자면 등반대장과 대원 간에는 방향 감각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등반대장은 구불구불한 길로 인도하는데, 길을 잘 모르는 대원의 입장에서는 정상은 보이지 않고 계속 방향을 바꾸는 대장에 대해 한 번쯤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 의심보다 대장에 대한 신뢰가 강할 때에는 문제가 없지만 신뢰가 약해지는 순간 등반대는 깨지고 제각기 산을 헤매다가 조난하고 만다. 정치의 패러독스도 방향에 대한 감각 차이로부터 생겨난다.
완고하게 한 방향만을 고집하는 정치 지도자는 파국을 초래하기 쉽고 능동적으로 상황에 대응하는 지도자는 지지세력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정치의 피할 수 없는 패러독스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자행하는 상황에서도 남북대화와 평화만을 주장했다면 문 대통령은 국내적으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고립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드를 배치하고 대북 제재를 주장한 결과 일부 지지자들로부터 "내가 찍은 대통령 맞나"라는 불만이 생겼고 급기야 "문재인을 찍었던 이 손이 부끄럽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 와중에 고 조영삼 씨가 '사드 반대'와 '문재인 정부 성공'을 외치며 분신자살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논리적으로는 두 가지 주장이 모순되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그가 외친 사드 반대가 문재인 정부의 지지기반을 붕괴하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작은 구멍이 큰 제방을 무너뜨리듯 방향 선회에 대한 불만이 모여 정치의 토대를 붕괴시킨다. 외부로부터 몰아쳐 오는 폭풍우는 헤치고 갈 수 있지만 내부에서 피어오르는 불신은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 방법이 있다면 패러독스가 아니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당면한 패러독스는 문 대통령이나 민주당의 잘못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 시점부터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차적으로는 사드 배치에 대한 논쟁의 과잉이 우려된다. 생각의 차이가 감정적 비난으로 이어지고 정치적 반대로 전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과거 정부들도 그렇게 집권기반이 약해졌다. 더 큰 문제는 당황한 집권세력이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금주 초에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사드특위의 공청회가 맥없이 끝난 것처럼.
그러나 정치적 패러독스의 종착역은 절망이나 무기력이 아니라 지혜이다. 세종대왕의 예를 들어보겠다. 1432년에 여진족이 압록강을 침범하자 세종은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데, 여기에 황희 정승만 동조했을 뿐 이조판서 허조나 병조판서를 지낸 역전 노장 최윤덕은 기존의 방식대로 국경 방어에 치중할 것을 주장했다. 수차에 걸친 토론의 결과 마침내 최윤덕 장군이 다음 해 봄에 토벌하자고 입장을 바꾸었고 토벌사령관직을 맡아 대승을 거두었다. 정치의 패러독스를 피할 수는 없지만 그 파급력을 완화하거나 나아가 새로운 동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지혜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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