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일반 중소도시하고는 다른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입니다. 어릴 때는 이 같은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데 타향살이를 하면서 '경주 사람'이라면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됩니다. 그게 경주 사람의 자부심 아니겠습니까? 사업에 있어서도 몸가짐에 있어서도 항상 경주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섬유 원사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태흥상사, ㈜태흥통상 권순호(67) 회장은 경주시 내남면 화곡리 사람이다. 요즘 경주에서 가장 유명지역인 지진의 진원지가 바로 권 회장의 고향이다. 이 지역은 경주 내 안동 권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주 사람들에게는 안동 권씨 대신 이 지역의 명칭인 '둥굴 권씨'로 친근하게 불린다.
그의 선친은 25세에 6'25전쟁에 참전, 포천전투에서 전사를 했다. 그가 첫 돌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으니 유복자나 다름없다.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외동아들로 자랐다. 지금도 고향에는 아흔 살의 노모가 살고 있다.
"어머니는 저에게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위대한 분이었으니 항상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어머니도 그 하나의 믿음으로 평생을 저만 바라보고 혼자 사셨으니까요." 그의 어머니는 자신은 물론, 아들이 힘들어 할 때는 항상 이렇게 다독였다고 했다.
내남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경주중학교와 경주고등학교에 다녔다. 당시 경주고는 포항과 울산지역에서도 유학을 올 만큼 명문고였다. 이어 대학에 진학했지만 어려운 집안 사정은 그를 대학 졸업 때까지 가만히 두지 않았다. 어머님마저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를 원해 대학 1학년 때 중퇴를 하고 공무원 시험을 봤다. 지금의 9급 공무원 시험인 5급 을류 시험에 합격했다. 전국 1천500명의 성적 우수자 중에서도 81등이란 성적을 거뒀다. 성적이 좋아서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었고, 주위에서 세무공무원을 추천해 국세청에서 11년을 근무했다.
그가 섬유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9년 당시 집안 친척이 운영하던 대동염공㈜에 간부 직원으로 특채되면서부터다. 37살 때였다. 이 회사에서 3년을 근무한 뒤 1992년에 태흥상사를 창업했다. 섬유원사 유통업이다.
"섬유원사 유통으로서는 대구경북에서는 가장 규모가 큽니다. 유통 부문에는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국내 유명 원사 메이커인 효성'코오롱'태광산업'대한화섬'도레이와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고 물량을 공급받아 원사공급을 했다. 그의 노력과 더불어 1990년대 섬유경기가 좋아 사업은 순탄했다. 그러나 이런 그도 외환위기를 비켜가지는 못했다. 1997년에 큰 부도를 맞았다. "부도가 나자 막막했습니다. 갑자기 어음이 쏟아져 들어오고 물건을 구하기도 어려웠으니까요." 이런 가운데 그에게 든 단 하나의 생각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옷은 입는다'였다.
현금으로 주고 산 제품을 납품하고 받은 어음이 모두 부도가 나 수년을 고생했지만 그동안 쌓은 신용과 각고의 노력으로 수년 만에 다 갚았다. 그러다 보니 학습효과가 생겨 이제 웬만한 어려움은 쉽게 극복해나갈 수 있는 내공마저 생겼다고 환히 웃는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섬유시장은 다시 어려워졌습니다. 요즘은 저마저 포기하면 섬유도시인 대구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사명감으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최근 컴퓨터 보안업체인 '쿠다하 소프트'를 설립했다. 크게 발전해서 하늘에 닿는다는 뜻으로 회사이름을 만들었다. 현재의 업과는 다소 이질적이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간다는 뜻이다. "바이러스보다 해킹이 더욱 위험합니다. 랜섬웨어처럼 해킹 공격이 있을 때 이를 잡아주는 시스템입니다." 현재 개발을 마무리하고 상용화 단계인데, 전국 기초자치단체에 우선 공급해 성능을 인정받았다고 했다.
권 회장은 재구경주향우회 격인 남석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남석회는 '남산의 옥돌(수정)'이란 뜻이다. 사업기반과 생활을 모두 대구에서 하고 있지만 경주를 잊지 말고 경주인의 자부심을 유지하기 위해 남석회 회장을 2년째 맡고 있다. 올해 31주년을 맞은 남석회는 매월 만나서 회원 상호 간 교류와 고향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해마다 10월에는 고향 방문의 달을 갖고, 고향 장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경주지역 다문화 가정을 돕고 있다. 또 안동 권씨 5만여 명의 종친회를 대표하는 대구종친회장을 맡아 친목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권 회장은 "고향을 떠나보니 고향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경주는 신라 56명의 왕을 배출하고 천년간 나라를 이어왔다. 경주 출신 학생들과 경주인이라면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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