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 삶의 질 어떻게 될지 생각 안해
대개 집 혹은 요양병원서 쉬고 있어
102세 김병기 화백 예술원 회원 추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 아냐
회갑잔치가 요란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40을 조금 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 마을, 한 동네에 60이 넘은 노인은 몇 되지 않았고 회갑을 맞은 노인들은 장수자로서 축하를 받을 만도 하였다.
미국에 거주하는 의사 내외가 인도네시아 오지 의료선교를 다녀와서 이런 말을 하였다. 산간벽지 어느 마을의 주민은 한 50여 명 되는데 그중에 40세가 넘은 사람은 두 사람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1920년대, 30년대의 평균 수명같이 40세를 넘지 못하는 단명한 나라들이 아직도 많이 있는 것 같다.
한강의 기적으로 나라의 경제가 날로 발전하여 국민소득 3만달러에 육박하는 경제 강국이 되다 보니 매일 먹는 음식도 많이 좋아졌고 건강보험도 세계 굴지의 좋은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도 곧 남녀 모두가 80세를 훌쩍 넘어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병장수가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인간에게 옛날부터 가장 절실한 소망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진나라의 시황제는 우리가 사는 금수강산에 젊은이들을 풀어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당부하였을 것인데 그들이 '불로초'라고 숭상하던 산삼을 구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사회적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백세를 살아보는 것이 인류의 한결같은 꿈이었던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요새는 너 나 할 것 없이 백세까지는 살 수 있다고 장담하는데 어떤 자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머지않아 120세가 될 것이라고 허풍을 떠는 자도 없지 않다. 사람이 오래 살게 된다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가령 백세를 산다고 하여도 그 삶의 질이 어떻게 될 것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가 알기에는 이 나라에도 오래 사는 노인들이 상당수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집에서 또는 요양병원에서 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가까이 알고 모시는 김병기 화백은 올해 102세이신데 아직도 왕성한 정력을 가지고 그림을 그릴 뿐 아니라 지하철도 타고 어디나 나가실 수 있지만 그런 노인이 우리나라에 몇 분이나 되겠는가! 김병기 화백은 지난 7월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되었으니 어느 백세 노인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사람도 올해 90이 되었는데 건강한 노인으로 소문이 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용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80이 넘으면서부터 현저하게 팔, 다리에 힘이 빠져서 먼 길을 갈 수도 없고 오래 서 있을 수도 없는 신세가 되었다. 역도도 하고 철봉도 한 단련된 육체를 가지고 팔다리의 힘이 누구보다도 강하다고 자부하고 살아왔건만 나이 90이 된 오늘 무거운 물건을 들 생각도 못한다. 젊어서부터 골골 앓기만 하던 사람이야 늙어서 힘이 빠진 상태를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그토록 건강하던 사람이 "이게 뭡니까"라고 한탄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얼마나 더 오래 살아야 할지 그것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답답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함석헌 선생의 스승이시던 유영모 선생은 당신이 돌아가실 날을 미리 알고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어른도 말씀하시던 그날에 돌아가시지 못하고 엉뚱한 날에 예고 없이 세상을 떠나셨다. 노인이 된 우리 모두가 다 그런 신세일 수밖에 없고 이 고생을 하면서 언제까지 살아야 할지 막연하기 짝이 없다. 공연히 무릎이 아파서 걸상에 앉아 있다가도 일어나기가 어렵고 테니스 코트에서 뛰어 본 적도 없건만 어쩌다 오른팔에 테니스 엘보가 생겨서 오른팔 팔꿈치가 그렇게 아프더니 그 아픔이 사라질 만할 때가 되니 그 통증이 왼쪽 팔꿈치로 옮겨가 왼팔을 들어 올리기도 어렵다.
아무 불평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보은으로 홍천으로 강연도 다니지만 차를 타고 가서는 강연장에 들어가 앉아서 강연을 하게 되니 '서서 말하는 까닭'이라는 책을 쓰기도 한 사람이 '앉아서 말하는 까닭'이라는 책을 또다시 써야 한다는 생각에 기가 막힌다. 이래저래 계절은 바뀌고 세월은 간다. 이제는 가는 세월밖에 바라볼 것이 없다. 그러므로 온갖 정성을 다하여 나의 주님이 나를 기다리시는 그 하늘나라밖에 바라볼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한 노인의 '생활백서'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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