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왔다. 7일은 입동(立冬)이었다. 겨울도 전기를 많이 소모하는 계절이다. 전기를 이용한 난방기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주 동안 기자가 식사 때 만난 취재원 중 여러 명이 '밥맛 없는 이야기'인 나라 걱정을 했다. 특히 전기에 대한 염려를 많이 했다. 이 중에는 에너지회사에 다니는 전문가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脫原電)이 심각한 전력난을 불러올 것이란 단언을 내리는 전문가도 있었다.
원전에 대한 궁금증이 불같이 일어났다. 이를 해결하고자 찾아간 사람은 김천혁시도시 내 한국전력기술 출신으로 30년을 이곳에서 근무하다 지금은 학교에 가 있는 이병식 단국대 융합기술대학 원자력융합공학과 교수였다. 지난 6일 오후 서울에서 천안까지 가는 길이 짧은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교수를 만난 뒤 서울로 돌아오는 길, 기자는 배낭에 뭔가를 가득 채운 기분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위험하니까, 사고 발생 가능성이 크니까 '탈원전'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평생 원자력산업 현장에서, 이제는 학교에서 원자력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그런가?
▶절대적으로 안전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원전의 안전을 얘기하자면 원전은 어떤 인공 또는 자연재해에 대해, 그리고 태양광발전 또는 풍력발전체계에 비해 100배에서 1천 배 정도 안전하다고 학자로서 단언할 수 있다. 최근 공사 중단이 됐던 신고리 5'6호기는 기존 원전보다도 안전도가 거의 10배 이상 향상돼 설계됐다. 원전은 다른 에너지원보다 1천 배 이상 안전성이 있다. 세계 에너지 산업계에서 원자력 에너지의 안전은 이미 보장돼 있고, 또 지구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마이클 쉐런버거도 원자력발전의 안전성과 필요성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을 쓴 리차드 뮬러 UC버클리 교수 등 세계적인 석학들도 쉘런버거의 의견에 동의하고 지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새로운 정부가 '원전이 위험하고 불완전한 발전 방식'이라고 말하는 근거가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다. '무엇 때문에 안전하지 않다' '무엇 때문에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설명을 했어야 하는데 그런 것에 대한 정확한 얘기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데도 선입견에 따라 위험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새 정부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사례로 들면서 원자력발전의 위험성을 강조하는데?
▶후쿠시마 원전을 비롯해 일본 동해안 원전에 대해 사고 전부터 쓰나미에 대한 경고가 많았다. 쓰나미를 막아주는 방벽을 세워야 하는데 후쿠시마는 안 세웠다. 그래서 큰 재앙이 생겼다. 또 후쿠시마 원전의 구조와 우리 원전의 구조는 많이 다르다. 후쿠시마 원전은 BWR(가압비등형 원자로)이다. 우리나라는 PWR(가압형 원자로)이다. 두 원전은 구조적으로 차이가 많다. 후쿠시마 원전(BWR)은 냉각수가 끊어지는 바람에 노심용융이 생겼다. 그래서 그 안에 있는 발연성 기체들이 구조 내 취약한 구조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발연성 기체가 못 나오도록 막아야 하는 것이 원자로 건물인데 후쿠시마는 원자로 건물의 벽 두께가 불과 10~20㎝의 패널구조였다. 폭발이 생기니까 원자로 건물 윗부분이 날아가버렸다. 결국 사고가 커졌다. 그런데 우리나라(PWR)는 일본과 같은 사고가 나더라도 이 안에 있는 가연성 물질이 밖으로 나오면 원자로 빌딩 격납용기 안에 모이게 된다. 격납용기는 두께 120㎝의 콘크리트 구조다. 폭발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나라는 격납용기 안에 갇혀버린다. 안전하다. 197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에 있던 스리마일섬 원자력발전소에서도 노심용융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에도 수소가 발생해 폭발이 생겼는데 원자로 건물 때문에 괜찮았다. 당시 스리마일섬 원자로 건물 벽체의 두께는 60㎝였다. 우리나라는 120㎝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노심용융이 생기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후쿠시마와 같은 그런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고 본다. 노심용융을 방지하는 이중삼중의 방어 장치들이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선진국들은 대부분 탈원전으로 가는데 왜 학계가 탈원전 반대를 하느냐고 주장하는데?
▶그렇지 않다. 정부가 선진국 예를 들면서 주로 독일 이야기를 하는데 독일은 상황이 좀 특수하다. 독일은 탈원전이라는 길을 가는 과정에서 무려 40년에 걸친 공론화 과정이 있었다. 모든 국민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까 그렇게 가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인 프랑스'미국'영국'일본 등에서 '탈원전으로 간다'는 신호는 없다. 영국 같은 경우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력 부분의 원전 비중을 30% 늘릴 생각이다. 그중 하나인 무어사이드(Moorside)는 우리나라 원전모델 APR1400을 후보군으로 분류해서 초청하고 있다. 힌클리포인트(Hinkley Point), 왈파(Walfa), 올드버리(Oldbury) 등 전체가 16GW다. 그러니까 12기에서 16기 정도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을 가지고 지금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상황이 좀 특수하다. 미국에선 셰일가스가 싸다. 셰일가스 때문에 기존 운영 중인 원전도 닫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그런데 셰일가스가 언제까지 갈 것인지에 대한 걱정은 미국도 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 자료를 보니 미국전력연구소(EPRI) 등에서는 원자력발전 용량이 지금 정도는 돼야 하지 않느냐는 예상을 하고 있고 이에 따라 원전 유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도 에너지 믹스(mix) 관점에서 원자력발전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프랑스는 기본적으로 원전 비중이 높다. 원전기술을 지금 수준으로 유지할 생각을 갖고 있다. 퇴역하는 원자력발전소만큼 새로 짓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전부 폐쇄를 선언했는데 그 이후 원전을 운영하지 않다 보니 경제적으로 악영향이 너무 컸다. 그래서 지난 7월 21일 일본 각의에서 원전 수급계획을 전면 백지화에서 안전성을 강화한 후 재사용으로 변경했다.
중국은 신규 원전 38기를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가 26기, 동유럽 체코 14기, 인도 19기 등 많은 나라가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 중이다. '선진국들이 모두 탈원전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친환경 에너지 비율을 높이면 원전을 대체할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원자력을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원전을 태양광으로 대체하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신안 태양광발전소만 한 태양광발전소 6천400곳을 더 지어야 한다. 4천억달러가 필요하다. 서울 면적의 7배를 태양광으로 덮어야 한다. 원전을 풍력발전소로 대체하려면 약 1천700억달러의 비용과 서울 면적의 19배 땅이 필요하다. 풍력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투자비와 유지비 측면에서 효율이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 우리나라는 바람이 자주 불지 않는다. 그래서 대안이 태양광이라고 하는데 태양광발전도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평균적으로 하루 3, 4시간 정도 발전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고작 3, 4시간만 운용하기 때문에 이 시간에 생산한 전기를 저장해 놔야 발전하지 못하는 시간에 쓸 수 있다. 그런데 에너지 저장시스템이 아직은 발전하고 있는 단계다. 저장 기술이 못 따라온다. 또 다른 대안이 LNG(액화천연가스)발전소다. 결국은 새 정부가 원자력발전소를 죽이고 LNG발전소를 세우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런데 LNG 공급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봐야 한다. 전 세계 LNG 저장량 또는 매장량이 얼마나 되는가도 봐야 한다. 앞으로 50년 정도 사용할 용량이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럼 그 후에는 어떡하나? 매장량이 한정돼 있다 보니 LNG 생산국은 채굴하는 속도를 줄일 것이다. 그러면 공급의 불안정성 때문에 가격의 불안정성이 생긴다. LNG는 국제정세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에너지원이다.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상당히 불안한 것이 LNG발전이다. 환경 측면에서도 맞지 않다. LNG발전은 전력을 생산할 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이 석탄의 절반이다. LNG는 또 메탄가스로 구성돼 있다. LNG 채광, 운반, 보관 과정에서 누출이 된다. 누출이 되면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스보다 온실효과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LNG발전은 지구온난화 방지 측면에서는 석탄발전보다 나을 것이 없다. 또 LNG발전은 초미세먼저를 생성한다. 응축성 미세먼지도 많이 배출하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 LNG발전이 청정에너지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탈원전 얘기를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 수준은 세계에서 어느 정도인가?
▶세계 1위다. 지금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프랑스, 러시아, 중국 정도다. 일본도 터키에 수출했다. 몇 나라가 안 된다. 나는 아랍에미리트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컨설팅'기술지원 역할로 참여했다. 현재 4기를 건설하고 있는데 2기는 거의 완공이 됐다. 후년 정도면 상업운전이 가능하리라 본다. 건설비를 포함해서 전체 매출이 21조원으로 기억한다. 원전 수출은 경제적 파급 효과가 엄청나게 크다. 우리나라에서 설계하고 기계도 공급하고 건설도 한다. 그 돈이 모두 우리나라에 떨어진다. 원자력발전소 수출이 늘어나면 김천 혁신도시 내 한국전력기술의 입지도 커진다. 한전기술과 협력하는 회사도 김천으로 몰려 온다. 현재 협력업체가 약 600곳이다. 협력업체들이 김천에서 영업활동을 하려고 했는데 원자력발전소 관련 매출이 떨어지니까 주저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원전을 건설하면서 21조원을 받고 나면 향후 운용서비스 매출이 60조원 정도 된다. 우리 인력들이 거기 가서 운전, 보수, 핵연료 공급 등을 하면서 또 다른 경제적 파급 효과를 낳는다. 우리 인력이 그곳에 파견을 나가면 연봉이 2억~3억원 정도 된다. 원자력발전소는 40년을 운전한다. 우리 청년들의 고급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그런데 태양광, 풍력이 만드는 일자리는 과연 어떤 일자리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주의 월성 1호기는 정부가 정지시킨다고 하고 고리는 이미 멈췄다. 문재인 정부는 원자력발전소 해체산업도 일으켜야 한다는데?
▶원자력발전소 해체시장의 규모가 큰 것은 사실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운용 중인 원전이 450기다. 이 가운데 운영중지된 곳이 150기 정도다. 150기 가운데 19기가 해체됐다. 나머지는 해체를 기다리고 있다. 운용 중인 450기 가운데 50% 이상이 건설된 지 30년 이상 됐다. 10년쯤 지나면 전부 해체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가 판단하기로 2002년 단가기준으로 봤을 때 420조원 정도로 시장 규모를 보고 있다. 그런데 420조원이 지금 기준으로 보면 더 올라갈 수 있다.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매력적인 시장이다. 420조원 가운데 우리가 200조원 정도 시장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설계의 역순이 해체지만 차이점이 있다. 설계는 오염되지 않은 것을 설계하니 오염 여부를 고려하지 않는다. 해체는 방사능에 오염된 것을 정리하는 것이다. 오염과 관련한 안전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건설보다는 해체가 산업 리스크가 크다. 비용도 그렇고 정치 환경도 그렇다. 꽃병의 꽃은 영원하지 않고 곧 시든다. 원전 해체시장이 그렇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이나 운영을 없애고 난 뒤 해체시장만 보고 가다가는 꽃병에 꽂아놓은 꽃 신세가 된다. 해체시장이 블루오션인 것은 맞지만 진정한 블루오션이 되기 위해서는 원전 운영'신규 원전 건설과 같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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