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신천은 청동기 이전부터 흐른 하천"

100년 만에 오류 밝혀

1924년 '대구읍지'를 시작으로 줄곧 조선 후기에 조성된 하천으로 알려져 온 대구 '신천'에 대한 역사적 오류가 약 100년 만에 정정될 수 있게 됐다. 20일 대구시청 별관에서 열린 '신천과 소하천 유로 변천 조사 용역' 중간보고에서 드러난 내용이다.

송언근 대구교대 교수는 보고회에서 "신천은 청동기 이전부터 흘러온 하천"이라며 "신천을 따라 이어지는 청동기 유물 분포지를 분석한 결과"라고 밝혔다. 이는 1778년(정조 2년) 대구판관 이서가 신천의 잦은 범람을 막고자 제방(이공제)을 축조하며 물길도 돌린 게 지금의 신천이 됐다는 내용을 뒤집는 것이다.

2007년 매일신문 기고 등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을 제기해 온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1778년 이전에 제작된 팔도여지지도(16세기 후기) 등에 표현된 신천은 지금과 같은 위치"라며 "신천(新川)은 이서가 새로 만들어 붙은 이름이 아니라 대구부와 수성현 사이에 있는 '사이천' '새천'(샛강) 등의 한자 오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 교수에 따르면 신천에 대한 잘못된 설명은 '대구읍지' 이후에도 1937년 일본인들이 쓴 '대구독본'과 1977년 대구시가 펴낸 '달구벌'에까지 이어졌다. 또 각종 인터넷 홈페이지 정보는 물론 이서의 공적을 기리는 이공제비(수성구 상동 이서공원 소재) 설명 표지석으로까지 퍼졌다.

결과적으로 대구의 젖줄인 신천을 이서가 조성했다는 오류는 바로잡아야 하지만 이서가 사재를 털어 상동교와 수성교(또는 동신교) 사이에 이공제를 축조해 신천의 분류인 대구천은 물론 신천 본류의 범람까지 방지했다는 사실은 '대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심임섭 대구시 도시기반혁신본부장은 "조사 용역이 완료되는 대로 온'오프라인상 신천 관련 설명 수정 작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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