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시래기 덕장

요 며칠 강원도와 제주'울릉도 등 도서 산간 지방에서 첫눈 소식이 들린다. 찬바람이 강해져 그저께 경북 의성'봉화 지방은 기온이 영하 9℃ 아래로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가을을 채 느끼기도 전에 계절이 겨울로 급히 넘어가는 느낌이다.

수은주가 크게 떨어지고 눈이 잦아지는 이맘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 중 하나가 눈 덮인 '덕장' 풍경이다. 냉장고가 보편화되기 전 음식물을 오래 보관하려면 소금에 절이거나 수분을 빼 건조시키는 일이 전부였다. 주로 명태나 오징어, 과메기 등을 '덕'(덕대)에 걸어 말렸다. 덕은 널이나 막대기 따위를 나뭇가지나 기둥 사이에 얹어 만든 시렁이나 선반을 말한다. 곶감이나 시래기도 덕에 걸어 말리는 식품이다.

대규모 덕장의 출발은 '황태 덕장'을 꼽는다. 1960년대 강원도 인제와 진부령'대관령 일대, 묵호항 등에 덕장이 들어서면서다. 명태뿐 아니라 대구와 오징어 등을 맑은 산바람과 햇볕에 건조시켰다. 건조한 명태는 말린 정도에 따라 이름도 제각각이다. 꾸덕꾸덕하게 반쯤 말린 것은 코다리, 완전히 말려 노랗게 변한 명태를 황태'북어라고 한다. 북어보다 더 바싹 말린 것이 '먹태'다. 북어나 먹태를 '말뚝이'라고도 부르는데 바싹 말린 상태가 말뚝같이 단단해서 붙은 이름이다.

웰빙이 유행하면서 건강식품으로 꼽히는 '무청 시래기'가 요즘 덕장의 새 주인이다. 요즘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등 농가에서는 무 수확을 끝내고 무청을 덕장에 말리느라 하루해가 짧다. 이곳 농가들은 단무지 무를 주로 재배한다. 예전 같으면 무청은 일손이 모자란다며 그냥 갈아엎거나 버렸던 재료다. 하지만 이제 시래기를 만들어 팔면서 농외소득에다 농한기 소일거리로 각광받는다.

귤밭보다 무밭이 더 많다는 제주도에서 무값 폭락으로 출하를 포기하고 농기계로 무밭을 갈아엎는 장면이 그제 TV 뉴스에 나왔다. 몇 년에 한 번씩 되풀이되는 일이다. 2014년 조류인플루엔자(AI) 때 무값이 크게 떨어졌다. 닭 튀김 소비량이 급감해 무 피클 소비도 덩달아 감소해서다. 생선회 소비가 줄어도 무값은 떨어진다고 한다. 접시에 까는 무채 소비가 줄기 때문이다.

뚝배기에 담아내는 푹 익힌 시래기 된장국은 단순히 음식을 넘어 옛 시절을 떠올리는 추억이다. 자란 환경이 전혀 다른 요즘 젊은이들은 도무지 느낄 수 없는 부분이다. 색다른 시래기 덕장과 건강한 먹을거리,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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