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대한민국의 최고 존엄은 국민이다

한국경제사회연구회 이사. 대검찰청 검찰개혁자문위원회 위원. 시화법률특허사무소 미국변호사. 원전특허법률사무소 미국변호사. 사우스웨스턴대 대학원 법학 박사. 경희대 법학과 졸업. 노동일 경희대 교수
한국경제사회연구회 이사. 대검찰청 검찰개혁자문위원회 위원. 시화법률특허사무소 미국변호사. 원전특허법률사무소 미국변호사. 사우스웨스턴대 대학원 법학 박사. 경희대 법학과 졸업. 노동일 경희대 교수

약속'합의 파기 중요치 않은 北

최고 존엄 김정은 심기만 중요

우리의 권력은 국민에서 나와

정부, 北 어깃장 당당히 대해야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이 나온다. 예상한 바는 아니지만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남북이 합의한 금강산 문화공연을 갑자기 취소한 북한의 행동 말이다. 위장 평화공세라도 짐짓 속아주는 게 낫다는 건 사실이다. '부자 몸 조심'이라고 하지 않았나. 올림픽을 잘 치러야 하는 우리가 잃을 게 많기 때문이다. 북한의 행태는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담담타타 타타담담'(談談打打 打打談談)이라는 마오쩌둥식 전술이 새삼스럽지 않다. 대화와 타격을 적절히 배합한다는 말이다. 전쟁 분위기로 몰아가다 갑자기 태도를 바꿔 평창올림픽에 참가해준다(!)는 말 한마디로 칙사 대접을 받는 중이다. 화해 무드에 취해 우리의 긴장이 풀릴까 봐(?) 북한은 적절한 채찍을 잊지 않는다. 현송월 방문 취소와 재개를 통해 우리 정부의 애면글면하는 접대를 이끌어냈다. 한마디 해명도 없이 나타난 그들을 위해 국정원 직원은 "불편해 하신다"며 우리 기자의 질문을 막았다. 단일팀, 태극기 사용 논란도 마찬가지다.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국민 여론이 심상치 않은 것은 그런저런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 국민의 자존심이 상한 결과이다.

공연 취소 역시 우리를 혼란시키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북한의 의도에 대한 온갖 추측과 해석이 나온다. 경유 반출 등에 대한 미국의 견제에 북한이 선수를 쳤다는 말도 있다. 일부에서는 먼저 우리 내부로 총구를 돌린다. 북한의 무례함 대신 우리가 북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이유부터 따진다. 2월 8일 북한의 전승절 열병식을 문제 삼은 게 잘못이라는 것이다. 북한 측은 '내부 행사'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행사 취소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북한이 우리 여론에 시비를 건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남북 고위급회담에서도 북한 측은 비핵화를 거론하는 일부 여론에 불편함을 표한 바 있다. 정부가 여론을 적절히 관리 못하면 잔칫상이 제사상이 될 것이라는 위협도 있었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해외매체에서는 평창 참가 재고 가능성까지 거론한다.

우리가 북한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잘사는 형이 못사는 동생을 품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맞는 말이다. 상대의 특성을 이해하고 역지사지할 때 대화와 협상은 순조로울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 온 북한 젊은이들이 장군님의 초상이 비에 젖고 있다고 울부짖는 일이 있었다. 남북한 지도자들의 악수 장면이 인쇄된 현수막을 보고서였다. 어이없지만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안쓰럽게 생각하는 우리들이다. 같은 맥락으로 그들도 우리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마땅하다. 북한이 자발적으로 그런 자세를 보일 리는 만무하다. 우리 정부가 대한민국 체제의 특수성을 당당하게 설득해야 한다.

북한에서는 이른바 '최고 존엄' 한 사람의 심기만이 중요하다. 협상이 성공하건 실패하건 상관없다. 약속을 깨든 합의를 파기하든 문제없다. 국제사회의 비난도 두렵지 않다. 최고 존엄만 만족하면 그만이다. 우리는 다르다. 대한민국의 최고 존엄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통령도 아니요 집권당 대표도 아니다. 국민들이 노여워하면 대통령도 집권당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부정적 여론은 대통령 지지도 등으로 나타난다. 단일팀 논란에 대해 장관, 총리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해명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북한이 함부로 오만한 태도를 보일수록 우리 정부의 입장이 어려워지는 현실을 설명해야 한다.

북한의 어깃장처럼 대한민국은 여론을 정부가 관리하는 나라가 아니다. 대통령도 마음을 다해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수 있을 뿐이다. 북한이 우리를 잘 알 것으로 지레 생각하지 말라. 설사 안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북한이 볼 때 우리의 여론은 중구난방이나 무질서로 비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장점이 그것임을 북한에 설파해야 한다. 걱정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과연 우리 정부 인사들이 그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최근 우리 인사들의 행보를 볼 때 괜한 기우가 아닐 수도 있다. 분명히 강조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촛불혁명의 본질이 바로 그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동일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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