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근혜 전 대통령 징역 24년 선고] "헌법상 책임 방기·대통령 권한 私人에 나눠 줘"

판결 주요 내용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리가 비어 있다. 연합뉴스TV 제공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리가 비어 있다.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주문, 피고인 박근혜를 징역 24년 및 벌금 180억원에 처한다."

'비선 실세'와 함께 국정을 농단했다는 사유로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재판부는 6일 징역 24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을 국정 농단 사건의 '시작과 끝'으로 본 사법부는 그에 상응하는 엄벌을 내렸다.

◆朴, 최순실보다 형량 4년 많아

법원은 박 전 대통령을 "국정 질서의 큰 혼란을 가져온 주된 책임자"로 규정하고, 공범인 '비선 실세' 최순실 씨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물어 징역 24년을 선고했다. 최 씨에게 내려진 형량보다 4년 많다. 이는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등 개인 혐의도 유죄로 인정된 점과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국정을 혼란에 빠뜨린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는 판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결정에 의한 파면 사태에 이르게 된 주된 책임은 헌법상 책임을 방기하고 국민으로부터 받은 지위와 권한을 사인에게 나눠준 박 전 대통령과 국정을 농단하고 사익을 추구한 최순실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도 이 사건 범행을 모두 부인하며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최순실에게 속았다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고, 책임을 주변에 전가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출연금을 내도록 기업에 요구한 혐의 등에 대해서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지위와 권한을 남용해 기업 경영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질타했다.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에는 "다수 종사자가 유무형의 불이익을 당했고, 담당 기관 직원이 청와대 등의 위법부당한 지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업적 양심에 반하는 일을 고통스럽게 수행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대통령이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함부로 남용해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불행한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응하는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의 1심 형량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박 전 대통령은 현재 나이 만 66세에서 24년 후인 만 90세까지 수형 생활을 해야 한다. 사실상 종신형과 같다.

◆18가지 혐의 중 16개 유죄

1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18개 혐의 중 16개에 유죄를 선고했다. 삼성그룹의 승마 지원 등에 대한 뇌물수수 혐의는 유죄였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삼성에 미르'K스포츠재단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출연하도록 한 220억2천800만원은 무죄로 판단했다. 앞서 1'2심 선고를 받은 최순실 씨 등 공범들과 같은 결과이다.

미르'K스포츠재단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관련 뇌물 혐의에 무죄 판결이 나온 건 제3자 뇌물 혐의 유죄 입증에 필요한 '부정한 청탁'의 존재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단독 면담을 기준으로 보면 이미 해결된 현안이거나 시기적으로 아주 다급한 현안이 아닌 부분도 있는 점 등 개별 현안에 대해 삼성에 명시적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승계 작업이 추진되고 있더라도 피고인이 뚜렷이 인식하고 대가관계를 인식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나머지 16개 혐의는 일부 유죄를 포함해 모두 유죄였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의 핵심 공범인 최 씨가 지난 2월 1심 선고에서 혐의 대부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20년에 처해질 때부터 이미 예견됐다.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1심 재판부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로 같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삼성이 최 씨 딸 정유라에게 72억9천여만원 승마 지원을 한 것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로 출연한 것 ▷최 씨가 SK그룹 현안 해결을 내걸고 뇌물 89억원을 요구한 것 등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며 박 전 대통령과 최 씨를 공범 관계로 적시했다. 또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모금 과정에서 대기업을 압박해 출연금을 받은 것 ▷현대자동차그룹이 최 씨 측에 일감을 몰아주도록 한 것 ▷포스코'KT'GKL 등이 스포츠팀을 창단해 최 씨 측 회사에 운영을 맡기도록 한 것 ▷광고업체 포레카 지분 강탈을 시도한 혐의 등도 최 씨가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봤다.

이 밖에도 박 전 대통령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정부 비판 성향 문화'예술계 인사를 '블랙리스트'(지원 배제 명단)로 관리하며 불이익을 주도록 한 혐의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통해 이미경 CJ 부회장 퇴진을 강요했다가 미수에 그친 혐의도 유죄가 인정됐다. 이 부회장 관련 혐의는 박 전 대통령 1심 공소장에 기재된 18개 혐의 가운데 유일하게 공범 재판에서 유무죄 판단이 나오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청와대 기밀문서를 최 씨에게 건네주도록 했다는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역시 유죄로 판단됐다.

◆'재판 보이콧' 朴, 항소할까?

'재판 보이콧'을 선언한 박 전 대통령이 1심 결과에 불복, 항소할 것인지를 두고 관심이 쏠린다. 현행법상 징역 25년형이 선고되면 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항소뿐만 아니라 상고심(대법원)까지 갈 수 있다. 형사소송법은 사형이나 무기징역, 10년 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된 경우를 상고 이유로 정하고 있다. 20년이 넘는 중형이 선고된 만큼 통상의 피고인이라면 당연히 항소할 것이라고 여기겠지만 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항소 여부를 쉽게 판단하기 어려워 보인다.

강철구 변호사 등 박 전 대통령의 국선변호인단은 재판 후 취재진과 만나 재판 결과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오늘 선고는 1심일 뿐"이라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항소심, 대법원에서 바른 판단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면서도 "항소 여부는 접견 후에 결정하겠다"며 확답을 미뤘다.

이처럼 항소 여부가 불투명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이후 법정 출석을 거부하는 등 재판을 사실상 보이콧해 왔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재판을 거부해 놓고 이제 와서 항소를 제기할 수 있겠느냐는 의견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항소 여부와 관계없이 항소심은 열릴 전망이다. 이날 재판이 끝난 뒤 검찰은 "최종적으로 법과 상식에 맞는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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