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醫窓)]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새 버전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BC 460~377)는 흔히 '의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현재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도 그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료의 윤리적 지침을 담은 대표적 문서다.

오늘날엔 이 선서를 현실에 맞게 수정한 '제네바 선언'이 일반적으로 읽힌다. 우리나라에서 의대를 졸업할 때 읊는 선서문도 사실 이것이다. 이 선서는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에 나의 일생을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로 시작한다. 의료인이 지켜야 할 윤리를 담았다는 점에선 옛 문헌과 다르지 않다.

새로운 의료기술이 연이어 소개되며 의학은 지금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숨기고 싶은 일들이 적지 않다. 바로 차별의 역사이다.

1929년 미국 터스키기 마을에는 흑인 매독환자가 유독 많았다. 자선단체가 기금을 마련하여 치료를 시작하였으나 곧이어 닥친 공황으로 자선기금이 바닥나 치료를 중단하여야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 공중보건국은 터스키기의 매독환자들을 대상으로 자연사 연구로 방향을 틀었다.

이들을 치료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관찰하는 연구였다. 페니실린으로 치료할 수 있음에도 1972년 언론에 폭로되기 전까지 비밀을 유지하며 이 연구를 진행하였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미국 의회는 1974년 국가연구법을 통과시키며, '생명의학 및 행동 연구에서의 피험자 보호를 위한 국가위원회'를 구성했다. 이어 임상시험의 인간 피험자를 보호하기 위한 윤리원칙과 가이드라인인 '벨몬트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벨몬트 보고서에는 인간 존중, 선행, 정의, 신의, 악행 금지, 진실 등 여섯 개의 기본 윤리 원칙이 담겨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재해석한 것으로 지금도 의료윤리의 근간이 되고 있다. 2005년 연구원의 난자를 이용한 황우석 박사의 연구도 벨몬트 보고서의 인간 존중 정신 앞에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아직도 우리 주위엔 차별이 존재하며, 공동체에 금이 가게 하고 있다. 선결 과제는 우리가 차별에 얼마나 무감각하였는가를 인식하는 것이다. 'Ladies and Gentlemen'으로 듣고 '신사숙녀 여러분'으로 통역하고,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며 '여남평등'이라 하지 않고 '남녀평등'이라 하고 있다.

요사이 헌법 개정이 뜨거운 관심사다. 전문의 문구 수정과 정부 형태를 바꾸는 부분에서 여야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면 시간이 걸려도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개정 못지않게 무관심으로 소홀히 해왔던 것을 지키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 헌법 전문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라고 쓰여 있다. 명문에만 머물게 하지 말고 그 의미가 우리 가운데 살아 숨 쉬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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