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서 독일로 들어갈 때도 달서구에서 남구로 오듯 아무런 제지도 장애도 없이, 언제 넘어온 줄도 모르고 국경을 넘었습니다.
곧장 독일에서 유학 중인 큰아들의 대학원 졸업연주회 일정에 맞춰 중부의 작은 도시 뷔르츠부르크로 갔습니다. 한국에서 가족들이, 그것도 자동차를 타고서 대륙을 건너왔다고 학교 당국에서 크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기숙사와 주차장을 무료 제공받고 한 달 동안 이곳에 머물며 독일의 많은 지방을 다녔습니다.
독일은 동쪽으로는 폴란드와 체코, 서쪽으로는 벨기에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 남쪽으로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스위스, 북쪽으로는 덴마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북해와 발트해를 통해 대서양을 접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도 유럽의 중심이라 불릴 만하지만, 실제로 독일의 경제력은 유럽연합의 중심에 자리하면서 유럽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통계상으로도 2005년 이후 지금까지 세계 최대의 수출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경제 대국입니다.
◆독일 최고 흑맥주, 밤베르크
밤베르크의 자랑인 '성베드로와 성게오르그 대성당'에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독일의 대표적인 종교 건물로서 독일인의 신앙의 깊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독일에서 가장 맛있는 흑맥주를 생산한다는 이 도시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을 만큼 소중한 문화유산이었습니다.
◆로마시대의 도시, 마인츠
프랑크푸르트를 돌아본 후 찾아간 마인츠는 그야말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BC 13년 로마시대, 2천년 전에 이곳에 성채를 건설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라인라트팔츠주(州)의 주도이며, 인구 20만 명도 안 되는 조그마한 도시이지만 화학과 유리제품, 광학기기, 기계 등의 산지로 유명합니다.
무엇보다, 서양의 기준으로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든 쿠텐베르크가 이곳에서 활약했으며 그의 이름을 딴 대학교도 있습니다. 구텐베르크 금속박물관에는 1455년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로 인쇄되었다는 설명문이 붙은 42행 성서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우리의 고려시대 '상정고금예문'이 이보다 200년이나 빨리 만든 금속활자본이지만 현재 실물이 없이 기록만 남아 있는 상황이고,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빼앗아 가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인 '직지심체요절'은 1377년에 제작된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독일 최초 대학교, 하이델베르크
독일이라는 나라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메뉴는 히틀러와 나치스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은 이곳이 나치 본거지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 도시는 독일 최초로 대학교가 세워진 곳으로 유명합니다. 600년 전인 1421년 하이델베르크대학이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이 대학 출신 노벨상 수상자가 무려 7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또 15만 명 정도의 전체 도시 인구 중에서 3만여 명이 대학생과 교수진, 또는 대학과 관련된 사람이라고 하니 이 대학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이델베르크의 또 따른 명물은 무너진 하이델베르크성입니다. 파손된 채 보존되고 있는 성곽에 올라서서 시가지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한 '황태자의 첫사랑'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유학 온 황태자가 호텔 주인의 조카와 사랑에 빠지고, 파리로 비밀스러운 사랑 여행을 떠나기로 했지만…. 황태자와 평민 여자와의 사랑…. 젊고 아름다운 사랑이지만 쉽게 짐작되는 슬픈 결말. 모든 게 논리적인 독일이니까 슬픈 결말로 끝났을 거라고 혼자 결론을 내려 봅니다.
◆벌거숭이 온천, 에르푸르트
여행을 떠나 100여 일 만에 처음으로 독일 중부의 에르푸르트지방에서 온천을 찾아 사우나를 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제대로 사우나를 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여느 테마 온천처럼 샤워장도 있고, 수영도 할 수 있는 따스한 온천물 풀장도 있었습니다. 사우나가 문제였습니다. 신선한 문화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우나 안이나, 울타리 안의 작은 풀장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태연한 그들 앞에서 눈 둘 곳을 찾지 못해 쩔쩔매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좋은 여행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고, 불편을 감수하면서 낯선 문화를 경험하고 문화와 풍습을 이해하면서 내 것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고 내 것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인식하는 계기를 삼는 것이 진정한 여행의 가치라고 개인적으로 판단합니다.
이 도시 이름을 따서 '햄버거'라고 불린다는, 햄버거가 처음 만들어졌다는 함부르크 시청 광장에서는 현지인들의 사진 세례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베를린에서는 50센트 유로화 동전에 양각된 브란덴부르크 문을 직접 만져보았으며, 독일 남부에서는 알프스 자락의 휘센 지방에 이르는 꿈길 같은 로맨틱 가도를 달려보기도 했습니다.
또 뉘른베르크, 슈투트가르트, 만하임, 하노버 등 독일의 많은 곳을 다녔지만 어느 한 군데에서도 빈곤이나 무질서, 비위생이나 치안 불안 등의 부정적인 상황을 겪지 않았습니다.
공업국이면서 농업국이고, 무역 규모 세계 1위이니까 상업국이기도 하고, 탄탄한 국가 기반, 잘 갖춰진 산업 인프라와 공공 시설물, 한 곳도 흠 잡을 데 없는 안정된 외양과 자신감 넘치는 독일인들의 여유로움을 보며 부러웠습니다. 너무 잘나가니까 얄밉기도 했습니다. 독일에 머무르는 내내 부러움과 감탄, 시샘이 끊임없이 이어진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돈이 따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독일 사람들, 정말 부지런합니다. 캠핑장에서 쉬는 것도 부지런히 쉽니다. 청소, 샤워, 수영, 독서, 휴식 뭐든지 부지런히, 담소도 부지런히, 음식도 부지런히 만들어 먹습니다. 맥주를 마시는 것도 열심히, 카드하며 노는 것도 부지런히 합니다.
변명하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없다고 합니다.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그걸 배상하고,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먼저 사죄하며 다짐하는 독일 사람들에게 전쟁 책임을 따지는 이를 근래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거짓말 일삼는 사람에게 희망은 없고,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에게는 사람이 따르지 않습니다. 독일의 정치인들은 독일의 국정 진로를 결정할 경우, 그 결정이 장차 유럽 전체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를 생각하면서 국정을 정한다고 합니다.
독일 사람들이 진정으로 남을,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몇 번이나 느꼈습니다. 매뉴얼대로만 하는 형식적인 친절, 일본인들의 입으로만 하는 그런 친절을 받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흔히들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지금의 독일은 기적이 아니라, 독일인의 합리성과 진실함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정상적이고 당연한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면에서 참 많은 부러움을 자아내게 한 독일과 독일인, 독일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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