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가 어렵다고요? 오페라는 400년 전 유럽인들이 즐겨보던 드라마입니다. 조반을 마친 서민들이 광장에서 눈물을 훌쩍이며 보던 아침극(劇)들이죠. 내용도 우리가 아는 클래식하고 다릅니다. 동성애, 출생의 비밀, 불륜, 고부 트러블, 상속 갈등 같은 어둡고 불편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일반인들이 오페라를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는 스토리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해결은 간단합니다. 작품소개 몇 줄만 읽고 유명한 아리아 한 두곡만 미리 듣고 입장하면 2~3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언론 매체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오페라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배선주 대표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홍보에만 열을 올렸다. 말을 끊는 '결례'를 범하며 몇 번이나 화제를 돌리려 애를 썼지만 어떤 질문에도 모든 결론은 오페라축제로 귀결되고 있었다. 못 말리는 그의 오페라 사랑 얘기를 들어보았다.
◆1981년 대구 최초 공연기획사 설립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던 그에게 음악은 일상이었다. 교회에서 기타를 배우고, 피아노를 치고 성가를 불렀다. 음대(계명대 작곡과) 진학은 예비 되어 있었던 듯 자연스럽게 결정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ROTC장교로 복무한 배 대표는 제대하면서 지역 최초 공연 기획사 '대구문화회'(1981년)를 설립했다. 당시엔 공연 매니지먼트 개념이 전혀 없던 시절,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대로 공연으로 연결하는 식이었다. 패티 김, 조영남을 초청해 디너콘서트를 도입한 것도 그가 최초였고, 정(鄭)트리오 초청공연을 성사시켜 지역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것도 그의 작품이었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 실내악, 독주․독창회, 지역 예술가들의 무대 등 1천500여 회의 공연을 기획했다.
그가 1988년에 기획한 '대한민국 교향악축제'는 한국 음악사에 기록될만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전국의 교향악단을 대구로 불러들여 벌인 축제는 서울의 중앙부처에서도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서울시에서 바로 다음 해 '교향악축제'를 시작했다. 대구의 민간 기획사가 싹을 틔운 음악축제가 지금 국민 클래식 축제로 발전했다.
그러나 외형적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통장 잔고는 줄어들고 지갑은 가벼워졌다. 대부분 공연들이 수익성과는 거리가 멀었고, 클래식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았던 땅, 집, 임야가 하나둘씩 남의 손으로 넘어갔다.

◆공연사업 실패 딛고 문화행정가로
가산을 상당부분 탕진(?)하고, 사업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지역의 한 기업인이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제 좀 쉬면서 유럽 무대를 한 바퀴 돌아보라는 권고였다. 일(상업적 계산)에서 떠나 순수예술로 공연을 대하니 작품이 이전과는 사뭇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몇 달을 유럽 공연장 투어로 보냈다. 덕분에 미국, 유럽 클래식 무대의 경향, 사조를 정리할 수 있었다.
귀국해서 대구보건대 초빙교수로 음악 현장을 바삐 뛰어다니는 사이 대구 남구문화원 초대원장에 임명됐다. 다양한 공연기획, 현장투어 등 이론·실무 경력이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일로 그는 공연 기획자에서 문화행정가로 거듭나게 된다. 과거 공연 매니지먼트 시절 아이디어를 행정에 접목하며 다양한 시도를 쏟아냈다. 이렇게 발을 딛은 문화행정 행보는 수성아트피아, 대구콘서트하우스를 거쳐 대구오페라하우스 대표로 보폭을 넓혀갔다.
그는 2015년 대구오페라하우스 대표로 취임하면서 대구오페라의 외적·내적 성장, 발전을 일궈냈다. 오페라 공연을 위한 전용무대 확보는 물론 자체 제작 시스템까지 갖추면서 국내 유일의 공연장과 프로덕션을 겸비한 오페라의 산실로 도약할 수 있었다.
◆이번 축제를 오페라 대중화 기회로
최근 그에게 새 과제가 생겼다. 대구오페라하우스의 리모델링을 마무리하고, 300석 규모의 소극장,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해 한국 유일의 오페라 제작극장으로써 면모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번 16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구 산(産) 오페라 해외 진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성장기, 개인사업, 문화 행정을 오가던 그의 대화는 어느새 다시 오페라축제로 돌아와 있었다.
이번 축제를 준비하며 그가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는 오페라 대중화. 시민들이 오페라는 어렵다는 인식부터 없애고, 영화나 드라마처럼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장르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지고 보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지금의 '미투 운동'과 닮은 데가 상당히 많다. 신분을 넘어서는 사랑 이야기를 그린 '라 트라비아타'는 우리의 '춘향전'과 비슷하고, 왕위 계승 비극을 다룬 '돈 카를로'도 조선시대 '사도세자'와 많이 닮아있다.
"오페라는 까다롭다는 선입견을 벗고 '예습'에 10분만 투자 해보세요. 극이 이해되면 그 딱딱하던 아리아가 감미로워집니다. 정말로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듣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놀라운 변화를 이번 오페라축제에서 꼭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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