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김정은의 교황 방북 초청에 메신저로 나선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3일부터 21일까지 유럽을 순방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평양을 방문해달라’는 김정은의 뜻을 전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평양 정상회담 기간 중 김정은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관심이 많다.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이에 김정은은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대변인이냐, 메신저냐”는 소리가 나온다. 문 대통령이 교황 초청 제의를 김정은에게 할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제의로 그쳐야지 김정은이 직접 해야 할 일을 왜 문 대통령이 나서느냐는 것이다.

교황청도 각국에 대사를 두고 있는 하나의 정부인 만큼 교황의 초청은 정부 대 정부 간의 공식 외교 행위다. 그래서 교황의 초청은 김정은이 외교 루트를 통해 교황청에 직접 제의하는 게 정상이다. 또 그렇게 해야 초청 목적과 이유가 정확하게 교황청에 전달될 수 있다. 제3자를 통해 전달되는 외교 메시지는 ‘원본’이 아니다. 그러기에 전달자의 생각이나 희망에 의해 긍정적 의미에서든 부정적 의미에서든 윤색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대변인이냐는 소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유엔총회 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전달하자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 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김정은의 교황 초청 의도는 교황의 방문을 이용해 북한을 ‘정상국가’로, 자신을 ‘정상적 지도자’로 분식(粉飾)해 세계에 각인시킨다는 정치적 목적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런 계산이 먹히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등 북한 비핵화 노력은 부정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교황 초청 제의를 전달키로 하면서 이런 문제를 얼마나 깊이 생각해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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