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월의 흔적]④옹기

옹기

김 종 욱 |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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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보다 장맛'이란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사람의 몰염치를 잘 드러내 보이는 말이다. 뚝배기는 장을 끓여서 우리 전통의 맛을 우려내는 그릇이다. 뿐만 아니라 밥상머리에 둘러앉은 가족의 단란함을 위해서 펄펄 끓는 뜨거움을 참고 견디기도 한다. 그래서 장을 맛있게 끓여 줄 수 있는 그릇은 뚝배기밖에 없다고 믿는다.

옹기그릇 가운데 뚝배기는 제 몸을 숯불에 달궈서 장을 끓인다. 밥상에 옮겨 앉아서도 전더구니에 장 칠갑을 한 채 비등점沸騰點 보전을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사기그릇인 사발․대접․탕기․접시 같은 그릇은 겨우 밥․숭늉․반찬 따위를 담아 가지고 정갈한 체 하면서 새침하게 앉아 있다. 이 같은 불공평한 밥상의 형태가 우리네 사회상을 돌아보게 하지만.

옹기는 질흙으로 만들어 옹기가마에서 굽는다. 그 장점은 통기성通氣性에 있다. 물은 통과하지 못하지만 공기는 통과하는 그릇이 옹기다. 그로 해서 예부터 숨 쉬는 그릇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내용물이 변질되지 않도록 오랫동안 저장하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아울러 그 안에서 발효식품이 발효 숙성할 수도 있는데, 술독이나 젓독이 그 좋은 예라 하겠다. 이 같은 능력은 저절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섭씨 1200도라는 고열의 불로 한번 지졌기 때문에 그 같은 능력이 생긴 것이다. 1200도 정도가 되면 옹기 흙에 들어 있는 유기물질로 해서 미세한 기공이 생긴다. 이 미세한 기공이 나와 너를 단절시키지 않고 소통시켜 주는 작용을 한다. 옹기를 보면서 새삼 불의 효능과 선조들의 슬기를 실감하게 된다.

옹기는 곡식이나 발효식품을 저장하는 기능이 세계 최고이다. 그것으로 해서 곡식을 오래 동안 갈무리할 수 있는가 하면, 우리네 식품 가운데 발효식품이 많이 발달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옹기 가운데 '푸레독'이란 것이 있는데, 옹기면서도 독특한 격조를 느끼게 한다. 쌀이나 곡식을 저장하던 용기로 널리 이용되었다.

보통 옹기는 유약을 바르지만, 푸레독은 유약을 바르지 않는다. 코팅 효과를 내는 유약 대신 1200도 온도에서 굵은 소금을 집어넣어 만든다. 그리고 솔가지를 태우면서 발생한 연기가 그릇으로 침투되도록 하였다. 이 연기로 해서 옹기의 색깔이 검으면서 푸르스름한 색깔을 낸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푸레독'이다.

투박한 뚝배기의 모습은 옹기장이의 무성의 때문이 아니다. 그게 뚝배기의 투박한 전형典型일 뿐이다. 뚝배기의 투박한 모습으로 해서 우리는 장맛이나 곰탕이나 설렁탕의 맛을 믿는다. 그 같은 음식의 깊은 맛은 뚝배기가 아니면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옹기는 선조들의 숨결과 영혼이 깃들어 있는 예술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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