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존슨의 능금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능금'은 대구의 명물로 통했다. 도심 곳곳에 '능금의 고장, 대구'라는 표지판이 크게 눈에 띄었다. 작곡가 길옥윤이 1971년 발표한 '대구찬가' 첫머리에도 '능금꽃 향기로운~' 노랫말이 나오듯 대구 하면 능금을 먼저 떠올렸다.

엄밀히 말하면 능금과 사과는 다르다. 능금은 야생 사과나무의 열매 즉 재래종 사과다. 열매가 작고 맛도 시고 떫다. 12세기 초 고려 의종 때 '계림유사'에 능금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보인다. 17세기 신품종의 사과나무가 중국에서 들어왔다는 기록도 있다. 이런 능금과 100여 년 전 대구에 뿌리를 내린 서양 사과는 비록 내력은 다르지만 같은 존재다.

대구 사과의 출발은 초대 동산병원장인 우드브리지 존슨이 1899년 미국에서 들여온 72그루의 사과나무다. 남산동 자택 정원에 처음 사과나무를 심었다. 이후 금호강과 가까운 칠성동 침산동 동촌 반야월 등지로 퍼졌다. 특히 1910년대부터 팔공산 자락 금호강 북쪽의 '동촌'(東村)에 과수원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불로천을 끼고 평광동과 도동, 불로동 등에 사과 벨트가 만들어졌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홍옥' 사과나무를 볼 수 있는 곳도 평광동이다. 1935년에 100여 그루를 심었는데 한 그루가 살아남아 80년이 넘도록 대구 사과의 맛을 전한다. 1960년대 대구는 전국 사과 재배 면적의 83%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구 사과의 명맥만 겨우 잇는 처지다.

기후 변화가 대구 사과의 퇴조를 불렀다. 1980년대 이후 인구 증가와 도시 팽창 때문에 도심 외곽의 과수원이 하나둘 사라진 것도 대구 사과 쇠락의 원인이다. 현재 국내 사과 생산량은 15개 품종에 45만t이다. 반면 대구 사과는 224농가, 3천여t이 전부다. 이마저도 2030년쯤 대구가 재배 가능지에서 제외된다는 관측이다.

다행한 것은 사과 재배 기술의 발전이다. 주 재배지가 경북과 강원, 충북 등지로 옮겨갔지만 이 땅에서 사과가 사라지지 않는 한 대구 사과의 명맥은 계속된다. 이 모두가 대구 사과의 흔적이어서다. 시민의 애정과 관심이 존재하는 한 대구는 사과의 본령이자 모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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