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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지지 않는 사내 갑질…군대식 위계질서에 저항하면 따돌리는 분위기가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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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천시하는 오랜 문화 아직도 깔려있어…합리적 규율 스스로 정해야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웹하드업체 위디스크 전 직원을 폭행하는 영상. 30일 뉴스타파는 양 회장이 지난 2015년 위디스크의 전 직원 폭행 장면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뉴스타파 영상 캡처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웹하드업체 위디스크 전 직원을 폭행하는 영상. 30일 뉴스타파는 양 회장이 지난 2015년 위디스크의 전 직원 폭행 장면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뉴스타파 영상 캡처

대구에 사는 장모(30·여) 씨는 5년 전 입사했던 첫 직장을 떠올릴 때면 몸서리를 친다. 직원이 5명 남짓한 사무실에서, 사장은 말 그대로 왕이었다. 원하는대로 되지 않으면 모욕적인 말과 함께 고성을 질렀다. 장 씨는 "사장은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직원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복장 규정도 정했다"며 "스트레스가 워낙 심해서 만성 두통과 소화불량에 시달리다가 결국 사표를 냈다"고 푸념했다.

최근 국내 유명 기업 고위 간부들의 직원 폭행 논란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만연한 '사내 갑질'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위계적인 조직문화와 기업가 정신의 부재, 미성숙한 인격 등을 사내 갑질 원인으로 꼽는다.

지난달 29일 포털사이트와 온라인 커뮤니티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 폭행에 대한 분노로 들끓었다. 국내 1위 웹하드업체인 위디스크 대표인 그가 2015년 경기도 분당 본사 사무실에서 과거 일하던 직원 A씨을 마구 폭행하는 영상이 공개된 것.

양 대표는 A씨의 무릎을 꿇게한 뒤 폭언을 퍼붓고, 뺨을 때리거나 머리를 손으로 내려치기도 했다. 퇴사한 A씨가 고객게시판에 회사에 대한 댓글을 남겼다는 이유였다.

앞서 같은달 25일에는 2015년 수성구 들안길의 교촌에프앤비 직영 한식당 '담김쌈' 주방에서 발생한 직원 폭행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본부장급 직원이 점장과 직원들의 얼굴, 어깨를 밀치고 식재료통을 바닥에 던지는 등의 행태를 보였고, 이런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이 퍼지면서 공분을 샀다.

이러한 사내 갑질은 중소기업과 기관·단체에서도 공공연하게 벌어진다. 대구 남부경찰서는 칠곡 동명면 팔공산 한 주차장에서 단합대회에 참가한 직원을 폭행한 혐의로 대구시태권도협회 간부급 직원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 사건은 복장 불량에 대한 지적이 폭행으로 번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내 갑질 논란이 커지면서 경찰도 속속 수사에 착수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양 회장의 폭행 사건과 관련, '사이버·형사 합동수사전담팀'을 구성해 수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31일 밝혔다.

교촌 담김쌈 폭행사건도 경찰이 내사 중이다. 수성경찰서는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점장과 직원들의 연락처 등을 탐문하고 있다. 경찰은 교촌에프앤씨 측을 통해 연락처를 확보하고, 당시 피해 정도와 경위 등을 파악할 예정이다.

사내 갑질이 숙지지 않는 이유로는 기업에 여전히 남아있는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와 위계 질서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피해를 입더라도 저항이나 폭로를 금기시하는 내부 분위기를 거스르기 어려운데 다, 도덕적 비난 이상의 처벌이나 책임을 묻기 어려운 제도적 허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남은주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는 "직원들을 함께 일하는 동료가 아닌 하급자로 보기 때문이다. 노동자에 대한 존중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은 "갑질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높아져도 상응하는 처벌은 미미하다. 비난만으로 갑질이 개선되기는 어렵다"고 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치관이 전혀 다른 세대들이 한 조직에 존재하면서 갈등이 극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기업들이 구성원에 대한 합리적인 규율을 스스로 고민하고 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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