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3일, 제7차 남북 장성급회담이 열린 판문점 평화의 집. 북측 수행원들이 쇠로 만들어진 가방과 막대기를 들고 나타났다. 남북 간 사전 합의가 없었는데도 회담장에 빔 프로젝터를 설치하려는 의도였다.
당시 국방부 북한정책과장으로 남북 장성급회담 남측 차석대표였던 문성묵(63)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안된다. 설치할 수 없다"고 했다. 북측 대표단은 설치해달라고 계속 요구했다.
문 센터장은 북측이 계속해서 설치를 고집하자 "설치하되 기자들이 퇴장한 뒤 틀어야한다"고 했다. 북측은 "알겠다. 약속한다"고 답했다.
약속을 부도낸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북측은 이내 약속을 어겼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기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빔 프로젝터를 가동했다.
당시 국내에선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뜨거운 이슈였다. 북한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서해 경계선인 경비계선을 보여주면서 NLL의 부당성을 주장하려는 화면을 빔 프로젝터에 담았다.
우리 측 장교가 재빨리 뛰쳐나가 몸으로 화면을 막았다. 북측 수행원들도 덩달아 몰려들며 남북 간 몸싸움이 벌어졌다.
소동이 일어나자 문 센터장은 당시 북측 대표였던 김영철 인민군 중장에게 "이게 뭐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북측이 약속을 어긴 데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끄라우!" 결국 김영철 대표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북측 수행원들은 김 대표의 명령이 떨어지자 거친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는 김 대표가 우리 측 대표단에 사과했다.
"제가 바보였죠. 북측의 말을 믿으면 안됐는데. 북한은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회담장에서 윽박지르다가, 때로는 사정하는 모습을 하기도하고,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보면 됩니다."
1992년부터 2009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할 때까지 20여년 가까이 남북군사회담에 참여해왔던 문성묵 센터장은 우리나라에서 북한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내놓고 있지만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남 적화전략을 거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 센터장은 대화를 하되 북한이 대남적화전략 성공가능성이 0%라고 느낄 때까지 한미동맹을 통한 강력한 대북 억제력을 갖추고, 이를 북한에 분명히 보여줘야한다고 했다.
-20년 가까이 남북회담 현장에 있었다. 군인(그는 육군3사관학교 13기다)이라고 하면 야전이 떠오르는데, 문 센터장은 어떤 이유로 야전을 떠나 남북회담에 참여하게됐나?
▶군인의 길을 걸었지만 배움의 길도 함께 걸었던 덕분인것 같다. 3사관학교와 가까웠던 경북대를 택해 사학과 2학년으로 편입한 뒤 학사학위를, 야전으로 나가 중대장을 마친 뒤엔 소령 때 국방대학원에서 국제관계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경북대 정치학과에서 3년반만에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런 경력을 인정받아 1992년부터 남북회담 업무를 보게됐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뒤부터 남북관계가 급격히 풀리면서 회담이 이어졌다. 당시 남북 정상이 철도·도로 연결을 합의함에 따라 이를 구체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군사당국이 실무를 맡아야했기때문에 남북간 군사회담이 본격화됐다. 2000년 9월 남북국방장관회담, 그해 11월 군사실무회담 등에서 주무과장 역할을 맡았고 이후 50여차례 회담에 참여했다. 2007년엔 남북군사실무회담 수석 대표도 맡았다.
-지금 북한의 실력자로 떠오른 김영철도 남북회담에 자주 나와 꽤 많이 봤을텐데 김영철은 어떤 사람인가?
▶김영철은 1990년대엔 먼 발치에서 봤다. 1990년대 초 남북 총리가 만나서 고위급 회담을 1차부터 8차까지 하고, 거기서 남북기본합의서를 합의했는데 그 북측 대표단 7명 중에 1명이 김영철이었다.
그때 기본합의서에 불가침분야 부속합의서를 만들기 위한 군사분과위원회가 있었는데 북측 위원장으로 별 하나, 즉 인민무력부 정찰국 부국장 직함으로 김영철이 나왔었다.
이후 승승장구한 김영철은 2006년 3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3차부터 7차까지 다섯 번에 걸쳐 열린 남북장성급 회담에서 북측 수석대표로 나왔다. 나는 우리측 차석대표로 회담에 참여해 김영철을 자주 만나게됐다.
김영철은 굉장히 총명하다. 감탄할 정도다. 매우 달변이고 권모술수에 능하며 임기응변이 뛰어나다. 그야말로 협상꾼이다. 대화를 해보면 말의 군더더기가 없다. 2007년 12월 내가 겪은 빔 프로젝터 사건처럼 김영철은 속임수도 많이 쓴다.
사실 내 자랑 같지만 김영철이 나를 어려워했다. 나는 큰 소리를 지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김영철이 엉뚱한 속임수를 쓸 때마다 근거를 들이대며 '이런 자료가 있는데도 당신, 이런식으로 말할거야?'라고 다그치고 정확히 짚어주면 아무말도 못하고 그는 쩔쩔맸다.

-김영철이나 리선권 등 남북회담에 나오는 이들은 전문성이 느껴지는가?
▶북한은 한 부서, 한 보직에 장기근무를 시킨다. 그러니까 한분야를 좁고 깊게 파들어간다. 그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김영철을 만나보면 이것이 느껴졌다. 그가 아직도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은 그만큼 노하우가 쌓였다는 의미다.
리선권은 김영철에 비해서는 총명함이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는 다소 투박한 스타일이다. 그리고 목에 힘을 주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래서 그를 처음 봤을 때 실력보다는 뭔가 보이지않는 뒷배경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예상대로 그는 조평통 위원장까지 오르면서 승승장구했다.
-북한을 오래 상대해봤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인가?
▶핵의 포기 여부는 오직 김정은 국무위원장만이 안다. 김영철·리선권도 핵을 포기할지 안할지 모른다. 포기 결정권은 김 위원장에게 있다.
지금까지 그들의 행태, 주장, 상황논리를 보면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부분적 포기를 하면서 뭔가 얻어내려할 것이다.
북한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말을 한다. 이는 곧 미국의 핵도 우리나라로 반입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이는 한미동맹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북한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 즉 CVID는 강도적 요구라고 극구 반대한다. 북한은 CVID,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를 할 의지가 없다고 본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카드를 잘게 쪼개는 이른바 살라미 전술을 통해 미국의 상응조치를 최대한 많이 이끌어내려는 것이 목표다. 미국이 북한의 속마음을 잘 아니까 제재를 풀어주지 않는 것이다.
-북한은 왜 핵을 포기하지 못하는가? 체제유지 때문인가?
▶핵이 없어도 체제유지를 할 수 있다. 베트남을 보라. 핵이 없지만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한다. 그런데 소련은 그많은 핵을 갖고도 체제가 왜 무너졌나? 그러니까 핵이란 존재는 정권과 체제 유지 수단으로만 본다면 포기가 어렵지 않다.
그런데 북한은 왜 핵을 고집할까? 우리는 북한의 진정한 속내를 알아야한다. 그것은 바로 대남적화전략이다.
6·25때 북한은 대남적화의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미국 때문이었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을 철천지 원수, 대남적화의 방해꾼으로 인식한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개발을 미국의 적대시정책 때문이라고 대놓고 얘기한다. 북한은 한반도에서 우리나라와 미국의 연결고리를 끊고 싶어한다. 북한은 핵의 일부를 갖고 있으면서 이 연결고리를 끊어낼 시도를 하고 있다. 한반도에 대한 미군의 핵 제공과 확장억제전력을 소멸시키려는 것이다.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을 얘기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1920년대로 돌아가보자. 마오쩌뚱의 중국 공산당이 중국 본토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당시 거의 없었다. 그런데 불과 20여년만에 세상이 바뀌었다.
북한의 최고 실력자로 불리는 김영철은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다. 그의 직함이 말해주지 않는가? 북한은 통일혁명역량강화를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이런 시도를 불가능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 되어야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해야할 조치는 어떤 것인가?
▶북한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북한 사람들을 오래 만나봤지만 20년 가까이 내가 겪은 경험처럼 우리는 수많은 세월동안 북한에 속았다. 그들의 협상 행태를 이제 우리 국민 모두가 잘 안다. 그 행태를 반복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북한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야할지, 선택지를 잘 안다. 하지만 북한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한미공조를 통해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를 반드시 유도해내야한다. 북한은 독특한 태도를 지닌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자신들의 꼼수가 통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경험많은 미국의 전략가들은 북한을 잘 안다. 그래서 미국과 북한의 6·12 싱가포르 회담에 대해 부정적인 것이다. 미국은 FFVD와 화학무기, 장거리미사일에다 인권까지 거론할 것이다. 우리도 북한의 인권에 대해 얘기해야한다. 그래야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북한의 핵은 한미동맹을 통한 강력한 억제력을 통해서만이 해결될 수 있다.
-북한의 세습체제에 염증을 느낀 주민들에 의해 북한 체제가 스스로 무너질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가?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이 5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24년이 흘렀다. 아직도 멀쩡하게 체제 유지가 되고 있다. 사실 나도 이해가 안갔다.
2000년 8월에 나는 평양에 갔는데 30미터 높이의 영생탑이 보였다. 김일성 동지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한다고 씌여있었다. 얼마 뒤에는 김일성 주석 이름 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름까지 얹어 김일성·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한다고 돼 있었다.
평양에 가서 북한 사람들이 달고 있는 김일성 배지를 보고 '그 배지는 뭐냐'고 물었다가 그들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배지가 아니고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이라는 것이다. 심장 부분에 배지가 달려있는데 이는 인민들의 가슴에 수령이 새겨져 항상 동행한다는 의미다.
김씨 3대는 이미 신과 같은 존재가 됐다. 그들 3대는 인간이지만 이미 신격화돼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북한 응원단이 우리나라에 왔다가 김정일 위원장 사진이 담긴 현수막이 비에 젖어있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말이다. 그냥 보여줄려고 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게 그들의 진심이라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한다. 세습왕조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그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북한에 장마당이 엄청나게 많고 휴대전화가 600만대에 이른다는데 결국 개방이 북한을 변화시키지 않을까?
▶북한 정권을 지탱시켜주는 두가지 기둥은 정보통제와 철저한 감시체제다. 600만대의 휴대전화가 있으면 뭐하나? 인터넷이 되지 않는데. 북한이 우리 확성기, 그리고 전단에 왜 민감한가? 정보통제를 무너뜨리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직장동맹·여성동맹 등 철저한 단체생활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한다. 이러한 감시체제 때문에 친족끼리도 서로 고발을 한다. 철저한 공안감시체제가 북한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도 장마당이 확산하면서 이제 돈맛을 알아가고 있을 것이다.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는 사회로 조끔씩 진행해나가는 징조가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북한 사회는 조금씩, 조금씩 흔들릴 것이다. 결국 북한 사람들이 돈을 알아간다는 것은 폐쇄경제, 자급자족사회에서 벗어나 대외의존도가 조금씩 높아진다는 의미다.
대외의존도가 최근 급격히 늘어나니까 강력한 한미 공조를 통한 대북제재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핵폐기라는 북한의 명확한 변화가 있어야 제재가 풀린다는 메시지를 계속, 그리고 명확하게 줘야한다.
그들은 조금의 틈새만 보여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으로 있다. 현재의 남북회담 실무진들이 모두 후배들인데 그들에게 틈나는대로 얘기한다.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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