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하인리히 법칙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1930년대 미국 보험사에 근무했던 허버트 하인리히가 법칙 하나를 내놨다. 산업 재해로 중상자 1명이 나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것이다. 대형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게 '하인리히 법칙'의 교훈이다.

KTX 열차 탈선사고 역시 어느 순간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다. 여러 번의 징후와 전조(前兆)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도 코레일은 사고를 막지 못했다. 더 걱정인 것은 탈선사고가 더 큰 사고를 예고하는 전조가 아닐까 하는 점이다.

하인리히 법칙은 재난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권력에도 유효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 비위 의혹으로 검찰로 원대 복귀된 수사관이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의 비리 의혹을 조사해 청와대 상부에 보고했지만 이에 대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징계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박근혜 정권 몰락의 전조가 된 '박관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2014년 11월 한 일간지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감찰보고서 내용을 보도했다. 정윤회 씨가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과 주기적으로 만나 청와대정부 현안을 보고받고 인사 등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만든 박관천 경정은 "대한민국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폭로했다. 청와대는 지라시 수준의 정보라며 묵살했다. 하인리히 법칙이 강조한 전조를 무시한 탓에 박 정권은 2년여 뒤 붕괴했다.

전개된 과정을 보면 두 사건은 비슷한 점이 많다. 집권 2년 차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지휘하는 곳에서 파견 나온 수사관이, 여권 실세 비위 의혹을 조사했고, 문건이 언론을 통해 터졌고, 청와대가 부인·반박하는 등 여러모로 닮았다.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흐리고 있는지(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권부의 비리가 내부자 폭로를 통해 알려지는 정권 말기 현상인지(장제원 한국당 의원)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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