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거지'의 완장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각설이패가 동냥을 하면서 불렀다는 '각설이 타령'이다. 경상도에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타령은 거지라도 남의 도움을 그냥 받지 않고 춤과 노래로 청중에 보답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역대 왕조는 전쟁·흉년 등으로 생긴 거지 떼를 사회 불안 요인으로 여겨 동향에 신경을 썼다.

거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한 최초의 왕은 명태조 주원장이다. 자신이 젊었을 때 구걸 행각을 한 적이 있으므로 그 경험을 살려 거지들의 자치단체를 만들고 우두머리로 단두(團頭)를 임명했다. 단두는 잘못을 저지른 하급 병사 출신으로 채워졌는데, 권한이 막강했다. 거지들이 동냥해 온 음식·금품을 공동 수거해 분배하는 것은 물론이고 거지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처벌하는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었다.

당시 단두는 타구봉(打狗棒·개 쫓는 몽둥이), 한연관(旱煙管·중국 곰방대) 등을 신물(信物)로 삼았는데,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거지 문파인 개방(丐幇)의 모티브가 됐다. 단두 완장만 차고 있으면 하루 종일 누워 뒹굴다가 동냥해 온 것 중에 맛있는 것만 골라먹으며 거지들의 왕 행세를 했다. 그 정도라면 괜찮지만, 인간의 탐욕은 가히 끝없다. 아이를 잡아다 실명케 하거나 팔다리를 잘라 장애인으로 만들어 앵벌이를 시키는 악행도 일삼았다. 한국의 거지왕 김춘삼은 고아원 설립, 거지·창녀의 결혼 주선 등 좋은 일을 많이 했지만, 중국의 거지왕들은 빌붙어 먹는 '거지 근성'의 정점에 있는 대표적인 군상이다.

땀 흘려 돈 벌지 않은 이들은 그 수고로움을 모른다. 월급 받은 적이 없고, 남의 돈을 갖다 쓰기만 한 이들은 일종의 '거지 근성'이 배어 있다. 그런 이들이 완장을 차니 온통 시끄럽다. 노동의 가치·노력에 대한 대가 등은 무시하고 그저 남의 것을 내놓으라고만 한다. 법은 필요 없고 '떼법'만 있을 뿐이다.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수구 세력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혼탁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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