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연동화 선생님, 한량무 예술인, 42년 장모님을 모신 사위, 교장선생님, 우수블로거, 올해 73세 손진규 씨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는 교직생활에 있을 때부터 하루 6시간 잠을 자고 나머지는 구연동화 봉사, 운동, 사진공부, 블로그 쓰기 등 잠시도 쉬지 않고 활동한다. 남들은 나이에 맞게(?) 좀 쉬는 게 좋지 않냐 얘기하기도 한다. 그가 부지런하게 사는 이유는 21세기에는 나이를 먹어도 배워야 살 수 있는 세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손 씨가 배움의 방법으로 택한 건 '소통'이다. 블로그는 그에게 신선한 소통 방식이었다.
예전에는 누군가 만나야만 소식을 나눌 수 있었지만 블로그를 시작한 후로부터는 시간이나 공간적 제약이 없어졌다. 전국 곳곳에 친구가 생겼고 인맥은 해외로 뻗어나갔다. 블로그를 통한 만남은 항상 새롭고 다양했다.
▶싸이월드에서 우수블로거가 되기까지
교장선생님으로 은퇴한 손진규 씨는 학교를 떠나는 일이 너무 아쉬웠다. 평생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으로 일하면서 언제나 잘 가르치는 학습법을 연구했고 성과를 인정받아 여러 번 수상하기도 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즐거웠지만 반대로 아이들로부터 배우는 시간도 좋았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에서는 어린 학생의 정보 습득 능력이 훨씬 빠르고 뛰어나다. 손 씨는 아이들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배웠다. 학교장 재직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싸이월드(미니홈피)'를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학생들과 소통해야만 배울 수 있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인터넷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온라인 상 소통 채널로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바쁜 일상을 기록하고 이웃들에게 공감 받아
손 씨의 일상을 블로그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는 미리 자식을 키운 부모로써 학부모들에게 전하는 가정교육 방법부터 꾸준히 이어온 동화 구연 봉사활동, 새롭게 시작한 운동이나 식물을 가꾸는 노하우까지 모두 블로그에 글과 사진으로 남겼다.
열심히 소통해 온 덕분일까? 은퇴 후에도 아이들과 함께 지낼 기회가 주어졌다. 그의 바쁜 대외활동을 눈여겨 본 한 학교재단에서 청소년 수련원장직을 제안했다. 손 씨는 수련원장을 지낸 5년을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회상한다. 국내 포털사이트에서 우수블로거로 선정되었고, 동안(童顔)선발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그의 행보가 더 많은 사람에게 주목을 받게 되면서 블로그는 더욱 흥행했다. 그의 교육철학에 감명 받은 사람도 있었고, 한량무를 추는 모습에 반해 블로그를 찾는 사람도 생겨났다. 온라인에서의 인연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의 블로그를 즐겨 찾는 재미교포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손 씨를 만나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고, 지역 유명 블로거들이 실제로 만나 각자 사연을 나누기도 했다. 블로그 친구에는 남과 여, 나이에 상관없이 함께 나눌 이야기만 있다면 친구가 되었다.
▶블로그 덕분에 누드모델과 춤을 추기도
우수블로거로 유명세를 타면서 그의 삶은 더욱 바빠졌다. 강연 초청을 받고 각종 행사에 참석했으며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던 와중에 그가 춤추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다는 작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한량무를 촬영하는 줄 알고 간 자리에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성 누드모델이 대기 중이었다. 촬영지에 도착한 후에야 사진작가가 한량무를 추는 손 씨와 누드모델을 한 장의 사진 속에 담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민망함을 숨기느라 진땀을 빼며 여성 누드모델과 사진촬영을 하는 기묘한 경험을 했다.
◆블로그 속 가장 소중한 글
손 씨가 블로그에서 가장 아끼는 글은 바로 장모님으로부터 받은 편지에 대한 글이다. 손 씨의 아내는 홀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외동딸이다. 장인어른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홀로 어머니를 모시면서 어려움이 없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말수가 적고 차분한 아내에게 상처가 될까 묻지 않았다. 장모님은 몇 년 전 사위에게 편지 한 장을 건넸다. 다름 아닌 장인어른이 한국전쟁 중에 집으로 보낸 편지였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지금은 철원에 있어요. 총성은 멎었지만 나는 너무 두렵고 무섭다오. 사랑하는 당신 그리고 우리 딸이 너무 보고 싶소." 장인어른은 철원전투 때 전사하셨다.
짧은 편지를 읽던 손 씨의 두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늘 높은 곳에서 장인어른이 딸을 잘 부탁하노라 말씀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 편지는 블로그에 공개되어 많은 독자들을 울렸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가족을 생각하는 장인의 마음 그리고 사위에게 딸을 맡기는 장모의 심정에 공감한 이웃들은 많은 공감의 댓글을 남겼다.
◆블로그 최고 인기 글
동안(童顔) 선발대회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는 블로그 최고 인기 글이다. 손 씨는 교사 시절부터 고운 미모(?)를 자랑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동안대회에 나가보라는 권유를 자주 받았다. 청소년 수련원장 재직 시절 지역 축제에서 열린 동안선발대회에 출전했다. 30대부터 70대까지 각양각색의 동안 경쟁자들 속에서 그는 1등을 차지했다. 동안 대회는 지원 자격부터 심사기준이 남달랐다. 일단 '동안'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두 가지 소개해야 하는데 그의 이야기가 심사위원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재미있었다.
손 씨의 환갑잔치 때 이야기다. 이날 잔치는 74년 초등학교 6학년이던 제자들이 모여 잔칫상을 차려주었다. 30여년 만에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한 제자가 스승님을 몰라보고 "얘는 누구니?" 라고 물어봐 모든 사람이 배꼽을 잡고 웃어야 했다. 겉늙은 제자들 사이에서 유난히 어려보이는 스승님을 몰라본 제자가 실수했던 것이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병원에서의 일이다. 종합건강검진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 서류상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손 씨를 본 간호사는 다른 사람 대신 온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결국 병원 측에서 신분 조회를 한 뒤에야 검사를 시작한 해프닝이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
손 씨는 앞으로 '시니어의 행복'이라는 주제로 블로그를 채워 갈 계획이다. 최근 주변을 둘러보면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멋진 노인들이 많다. 나이가 들어서도 위축되지 않고 노년을 행복하게 가꾸는 모습, 진정한 어른으로 사는 사람들의 삶을 블로그에서 소개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다. 손 씨 자신도 계속 배우고 나누면서 활기를 잃지 않는 당당한 어른의 모습을 준비하고 있다.
손 씨는 좀 더 나은 소통과 배움을 위해 더욱 노력 중이다. 글보다는 사진으로 소통하는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수 년 째 사진을 공부하고 있다. 꾸준히 작성해 온 블로그처럼 좀 더 보기 좋은 사진이 소통의 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거라 믿는다. 배움과 소통의 공통점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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