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나의 거울입니다. 내가 웃지 않으면 거울은 절대 혼자 웃지 않습니다. 거울을 웃게 하려면 내가 먼저 웃어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방을 나서는 기자를 몸소 문 밖까지 배웅하며 스님이 한마디를 더 건네신다. 새해를 맞은 우리 사회를 향해 주신 화두인 듯하여 산을 내려오는 내내 귓전에서 맴돌았다. 정말 지당한 이치(理致)인데 어렵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미소를 지었던가, 아니면 이맛살을 찌푸리며 화부터 내었던가.
매일신문이 새해를 맞아 기획한 '혼돈의 대한민국, 종교지도자에게 듣는다' 인터뷰를 위해 팔공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팔공총림 동화사를 찾았다. 100분 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효광 주지 스님은 '이치'와 양보, 화합을 강조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우리 사회가 양극화와 계층 간 갈등, 사상의 대립으로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대립과 반목, 갈등은 자기의 관점만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남산이지만 반대편에 사는 사람에게는 북산이요, 서편 사람에게는 동산, 동편 사람에게는 서산인 것이 당연한 이치일 텐데 서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산은 그저 그렇게 존재할 뿐인데 나만 집착합니다. 그 집착만 살짝 내려놓으면 대립과 갈등이 해소될 수 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내가 북쪽에 사니 내게는 남산이지만, 남쪽에 사는 사람에게는 북산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입니다. 이치를 먼저 알면 다툼이 생길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비정규직 청년 근로자의 죽음을 비롯해 인간의 인격이 말살되고 추락한 여러 가지 사건도 많았습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만 더 가지려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전에 운거도응 선사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 솥이 하나 있는데 떡을 쪄서 세 사람이 먹으면 모자라는데, 천 명이 먹으면 남는다. 이것이 어떤 도리인가." 모두가 묵묵부답이자 도응선사가 설명했습니다. "쟁즉부족(爭卽不足)이요, 양즉유여(讓卽有餘)라. 다투면 부족하지만 사양하면 남는 법이다."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 팔공산처럼 많아도 다투면 부족합니다. 반면 한 그릇의 밥이라도 서로 사양하면 남는 법입니다. 경전에 다이아몬드나 황금이 히말라야 산처럼 많아도 한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양보하는 것이 당장은 바보짓 같고 손해인 것 같겠지요. 지금 당장은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서로서로 양즉유여하면 금세 모두가 잘 사는 사회가 되는데, 그 순간을 넘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양보하는 것이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우리 지역 사회에도 여러 가지 갈등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공항 이전을 둘러싸고 대구의 민심이 양분되어 있는가 하면, 대구시와 구미시는 취수원 이전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양보해야 타협이 가능할 텐데요.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가 양보해야 합니다. 내 입장만 생각해서 산 하나를 두고 이것이 남산이다 북산이다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상대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대구시든 구미시든 형제지간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싸워야 합니까. 형제지간인데 형제인지 모르니까 싸우는 겁니다. 지금 양보하면 진다, 죽는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양쪽으로 팔을 펼쳐 보십시오. 두 손은 극과 극으로 멀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도 이치를 따져 보면 내 몸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겉만 보니까 철천지원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이 하나로 되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눈을 감고 캄캄하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눈만 뜨면 대명천지 밝은 세상이요 아름다운 꽃 세상인데, 눈을 감고서는 반목과 갈등밖에 없다고 한탄하는 셈입니다.
-대구경북이 요즘 여러가지로 많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힘들어하는 지역민들과 청년들에게 용기를 주십시오.
▶팔공산을 중심으로 하는 대구경북은 신라 삼국통일의 주체였고 동력이었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그런 자존적 DNA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외지에서 온 분들도 그렇게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 민족, 우리 역사에 대한 소명감을 느껴야 합니다. 팔공산 주변 세력이 삼국통일의 동력이 되었듯이 남북통일 시대에도 큰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대인(大人)다워져야 합니다.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해줘야 대인이고 인격 높은 사람입니다. 길이 설령 다르더라도 화합하는 사람은 대인이고, 한 길 한 배를 타고 가면서도 화합하지 못하면 소인배입니다. 초목이 어지러이 있는 것 같아도 서로 어울려서야 숲을 이루는 법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힘든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힘들수록 호흡을 조절하고 여유를 가졌으면 합니다. 힘들다고 조급해하다 보면 판단을 그르치기 쉽습니다. 자세히 보면 새끼줄인 줄 알 수 있는데, 뱀으로 오인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던 가치관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는 걱정도 있습니다.
▶종교(宗敎)라는 한자에서 가르칠 교(敎)자를 파자하면, 효도 효(孝)자에 글월 문(文)입니다. 효도는 바로 그릇이요 기본입니다. 이 그릇을 바탕으로 학문이라는 음식을 담아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자기집 어른 뿐만 아니라 이웃어른에게도 잘못하면 못된 인간, 나쁜 인간으로 취급했습니다. 요즘 부모들에게 물어보면 이럽니다. "효도가 따로 있나요, 공부 잘 하는 게 효도죠." 단순하지만 간단한 이 한마디 말이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완전히 전도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릇에야 아무리 더러운 오물이 묻었거나 말거나 음식만 잘 만들어 담으면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요? 가르칠 교(敎)자의 가르침은 선효(先孝) 후문(後文)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선문(先文) 후효(後孝)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올해 3월부터 동화사는 태교강좌를 시작합니다. 제대로 된 가치관을 어머니 배 안에 있을 때부터 심어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태교신기(胎敎新記)'라는 책에 '사교십년 미약모시월지육(師敎十年 未若母十月之育)'이라 했습니다. '스승의 10년 가르침이 어미가 배 속에서 열 달 기르는 것만 못합니다. 종교를 떠나 모든 어머니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으로 진행합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홍헌득 편집부국장 duckdam@imaeil.com
정리 권성훈 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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