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 스케치] 철없는 사람들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언제 철들래?'

해가 바뀌니 나이의 무게를 실감한다. 그 계기는 다름 아닌 집사람의 눈빛 때문이었다. 휴일에 뒹굴뒹굴하며 휴대폰으로 무협소설을 읽는 필자를 지켜보던 집사람은 "쯧쯧!" 하며 혀를 찼다. 집사람 표정을 보니,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나이 먹고 아이들도 안 하는 짓을 하고 있으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젊을 때 어른들로부터 '시근이 없다'('철없다'의 경상도 사투리)는 소리를 곧잘 듣곤 했는데, 오십 넘은 나이에 비슷한 상황을 맞고 보니 쑥스럽긴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집사람의 눈빛이 매섭더라도, 남자의 의연함과 기백을 잊어서야 될 말인가. 후환이 두렵긴 했지만, '남자는 환갑이 돼도 철 안 든다'는 속설을 떠올리며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굳건하게 버텼다. 여전히 무협소설·온라인게임 등을 즐기고 술도 끊지 못한 필자는 '나이 든 철부지' 취급을 받은 것이 어제오늘이 아니다. 그렇기에 집사람 앞에서 '제 버릇'을 고수할 수 있지만, 그렇게 살지 않은 분들은 당장 '나잇값 못한다'는 욕을 듣기 마련이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가 듦은 속박과 의무를 동반한다.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을 지나면서 공자님 말씀대로 나이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그저 '체면'과 '가식'으로 무장해 있을 뿐, 젊을 때보다 진정으로 성숙했는지 의문스럽다. 시몬 드 보부아르처럼 '어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이로 부풀려진 어린애다'라고 주장하며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영혼의 자유를 갈구하기 위한 철없는 행동과 자신의 이기심·탐욕을 갈구하기 위한 철없는 행동은 엄격히 구별돼야 한다는 점이다. 필자야 집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도지만, 나잇값 못 하고 사회·국가적으로 폐를 끼치는 분들이 어디 한둘인가. 지하철을 타면 그런 분들을 거의 매일 만난다. 큰소리로 떠드는 할머니, 술 취해 소리 지르는 할아버지, 마구 밀치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는 어르신, 부인에게 욕하는 할아버지…. 젊은이들에게 못 볼 꼴 보여주면서 단지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한국에서 '경로사상'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현상은 지하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꼴불견은 집회 따위에서 백발 휘날리며 육두문자를 마구 뱉고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주먹질하려고 달려드는 어르신들이다. 10대 불량서클 조직원도 아니고 나잇값 못 하는 사람들이다. '노조' 글자 새긴 빨간 조끼 입고 무슨 완장이라도 찬 것처럼 거들먹거리고 있는 분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만 옳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으니 공감대를 얻을 턱이 없다.

권력 잡은 이들의 철딱서니 없는 행동은 더욱 심각하다. 국민을 '우매한 대중' '교화 대상'쯤으로 여기고 자신의 신념을 위한 '실험용 쥐'처럼 취급하는 태도에 진저리가 난다. 우리가 하면 '선'이고 남이 하면 '악'이라는 자기중심적 사고와 '진보'라는 간판만 앞세우면 만사형통이라고 여기는 것은 영락없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20대에 형성된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50·60대가 되어서도 고수하고 있는 모습은 퀸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에 나오는 성장을 멈춘 난쟁이 '오스카'를 연상시킨다. '40세에도 바보는 진짜 바보다'라는 서양 속담이 생각난다.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나이가 들면 현명해진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한국의 위정자들은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철없는 정치가는 국민을 위태롭게 한다. 책임감과 소명 의식은 뒷전이고 자신의 생각과 이념만 고집하기 때문이다. 치기 어린 20대에서 정신적으로 한 치도 성장하지 못한 이들이 득실대는 세상이다.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언제 철들래요?"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