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수도권이 평등을 이루는 날은 올까? 모든 사회운동이나 사회정책이 제도만 갖춘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고 사람들 의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우리의 지방분권은 갈 길이 멀다. 가족을 서울에 두고 주중에 내려와 일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그들에게 지방의 일터는 곧 서울이다. 기차역과 터미널에서 이어진 사무실까지 서울의 연장인 셈이다. 남극 기지나 점령군 요새 같은 곳을 벗어난 바깥은 그들에게 살 곳이 못되나보다. 책임감 있는 가장은 여기서 버티지만 금쪽같은 식구는 사람 사는 서울에 남겨둬야 된다. 그런 회사원, 교수, 큐레이터가 내 주변엔 수두룩하다. 그 중에 누구는 이곳 대구가 재미없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재미있는 사람 못 봤다. 주말에 나도 따라 올라가서 그 양반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노는지 보고 싶다.
분명한 건, 지역불균등 현상이나 도시 공간 문제를 연구하는 방법 자체가 서울 도심을 고찰한 사회과학 이론에 기대고 있단 점이다. 이 동네의 장소 이치를 풀어내는데 딴 동네 이야기를 먼저 한다. 학문이 그렇고, 예술도 그렇다. 미디어 아티스트 김미련은 이곳의 모습을 캐내려 한다. 우리나라에서 김미련만큼 뉴미디어를 장소 특성화로 잘 풀어내는 작가도 드물다. 이런 그녀가 향촌동에서 야심작을 터트렸다. 일인칭 시점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느끼는 과거와 현재의 향촌동은 전시공간으로부터 반경 2km라는 설정을 뒀다 한다. '과연, 김미련'이란 찬사가 나올 개인전이다. 일층 금고로부터 이층 삼면의 파사드까지 배치된 영상과 키네틱과 오브제 형식은 뭐랄까, 높은 완성도와 반짝이는 아이디어와는 별도로 굉장히 정석을 따르고 있다. 지난 대구 향촌동의 역사가 여기에 소복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게 우리 모두의 기억은 아니다.
내게 향촌동은 30년 전, 이곳에 남아있던 대중문화 상권에 더 닿아있다. 전설의 코르테즈 운동화, 파이어버드 점퍼, 새우버거와 밀크쉐이크를 이 동네에서 소비했다. 그 형태와 색깔과 맛과 향은 내 취향에 박혀있는데, '응팔' 덕선이 세대의 집단 기억은 대중문화가 품을 뿐이지, 순수예술이 다루기엔 무리가 있는 걸까. 우리 사회에서 1988년을 분기점으로 로컬의 장소성은 대중문화의 상품화 속에 옅어졌다. 공인된 근현대 역사 이야기 대신, 어정쩡히 스쳐간 과거가 미술에 등장할 때도 되었다. 친숙한 장소에 그치지 않고, 익숙한 세대 감성에 관한 연대기 말이다. 나와 같은 세대인 작가 김미련은 충분히 그걸 해낼 수 있다. 이 전시를 보면서 얻은 믿음이다.
윤규홍 (갤러리분도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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