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명곡에 얽힌 이야기] ⑪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위대한 작품도 무시 당할 때가 있다"

차이코프스키
차이코프스키

작곡가 차이코프스키는 늘 신경쇠약 증세를 앓았다. 성공보다는 실패에 더 민감했던 차이콥스키는 그가 음악의 구세주라고 생각했던 모차르트와 자신을 비교하며 형식미와 구성력의 부족함을 한탄했다. 그는 피아노 협주곡 3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1번도 작곡 당시에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1874년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작곡한 차이코프스키는 당시 모스크바음악원 원장이었던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에게 헌정했다. 그는 자신도 흡족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곡이라 생각해 자신있게 루빈슈타인에게 가져가 초연 피아노 연주를 부탁했다.

그러나 루빈슈타인은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악보를 상세히 검토한 루빈슈타인은 '졸작'이라며 혹평했다. 차이코프스키는 격분해 방을 뛰쳐나갔다. 루빈슈타인은 뒤따라가 몇 가지만 수정하면 자신이 초연을 맡겠다며 차이코프스키를 달랬지만, 차이코프스키는 "단 한 개의 음표도 고칠 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차이코프스키는 독일의 명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에게 이 곡의 초연을 의뢰했다. 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했던 뷜로는 1875년 미국 보스톤 공연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후문에 의하면 루빈슈타인이 처음 차이코프스키에게 그렇게 냉혹한 평을 한 이유가 그와 같은 훌륭한 작품을 내놓으면서 선배이자 피아노의 대가인 자기에게 한 마디의 조언도 구하지 않은 것이 서운해서였다는 말도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퇴짜를 맞은 차이코프스키의 곡이 이 한 곡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35' 또한 그 당시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손꼽히던 레오폴드 아우어에게 초연을 부탁했지만 "연주 불가능한 곡"이라는 평을 받으며 퇴짜를 맞았다. 이 곡 역시 뒤늦게 인정받아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의 것들과 함께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하나가 되었다.

이후 피아노협주곡 제2번, 3번은 처음부터 루빈슈타인 등이 달라붙어 기꺼이 초연을 맡아 주었다. 그때 차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이 곡들은 아무래도 별로일 거야. 내 협주곡은 퇴짜를 맞아야 명곡이 되는데…"라고. 놀랍게도 그의 예측대로 그 두 곡은 1번에 비해 유명한 곳에 들지 못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