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좋은 단어가 있다. 화양연화.
꽃 '화'자가 들어가서일까? 우리 엄마 이름과 비슷한 음절이어서인가?
처음 이 단어를 알게 된 것은 방탄소년단의 연작 앨범명에서였다. 그 뜻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의미했다. 또한 왕가위 감독이 19년 전에 제작한 영화 제목이기도 했다.
요즘처럼 만개한 벚꽃들을 볼 때면 이 화양연화라는 한자어가 더욱 와닿는다. 그대여 그대여~빠밤빠 빠밤 벚꽃엔딩의 전주가 한 차례 내 맘을 흔들고 자꾸만 늘어지고 있는 턱살들이 또 나를 울린다. 인간의 젊음은 한번 피고 나면 끝인데 꽃들은 해마다 다시 펴서 사랑을 받는다. 물론 화무십일홍이라고 열흘 가는 꽃이 없긴 하다. 꽃의 생의 주기가 인간에 비해 무지 짧고 요즘엔 미세먼지로 분칠까지 해야 하지만 매년 피어나는 꽃은 경이롭다. 흰머리를 숨기려고 염색이라는 몹쓸 짓을 자행하면서 나일론 빗자루가 되어 버린 내 머릿결. 나의 재생력에 비해 여리여리한 꽃잎들의 결은 여전히 보드랍고 아름답다.
많은 독자들이 보는 지면을 고작 나의 넋두리로 채우면 안되겠다는 강박관념이 생긴다. 나이는 숫자일 뿐 위로하며 나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나 소환해 본다. 저마다 가슴 속에서 정의하는 화양연화의 순간이 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절절히 사랑했던 순간이라고 말했고 방탄소년단은 청춘의 시절로 표현했다. 어쩌면 아직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꽃같은 이팔 청춘들은 현재의 아름다운 시절을 알지 못하고 아파하고만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일흔다섯 우리 엄마의 화양연화가 궁금해졌다. "엄마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였어?" 여쭈니 "니들이 학교 들어가고 잘 되는 거 볼 때"라고 했다. 나를 낳았을 때라고 하지는 않을까 김칫국 마시며 조금은 기대한 대답이었지만 막상 들으니 먹먹했다.
봄은 짧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도 봄만큼이나 휘익 지나갈지도 모른다. 짧아서 귀한, 인생에서 가장 빛난 순간을 정의하는 데는 스스로가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가능하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일에 가치를 두었는지가 힌트가 된다.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 화양연화의 기억이 작금의 현실과 비교해 우리를 비관하게 하거나 슬프게 하지 않았으면 싶다. 누구에게나 기쁨과 고통은 믹스 커피처럼 뒤섞여 있기 마련이다. 제 때를 찾아오는 이 계절처럼, 스스로를 반추하면서 좀 더 행복한, 좀 더 나은 우리가 되어 가면 참 좋겠다. 현재 아름다운 순간을 보내고 있거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기억을 가진 이들은 내일의 삶에 큰 용기가 될 것이다. 설령 아직 화양연화가 없었다고 말하는 자들은 힘을 내길.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화양연화가 예고없이 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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